"울면서 그는 그것을 한다. 처음에는 고통이다. 그다음에는 고통이 사그라지면서 변해 간다. 천천히 고통에서 빠져나와 쾌락으로 빨려 들어가, 향락을 즐긴다. 형체가 없는 바다, 비길 데조차 없는 그 바다."

이 글은 프랑스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쓴 <연인>의 한 구절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사용한 <누보르망>의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을 하다, 1984년 고희의 나이에 자전적인 소설 <연인>을 세상에 내놓는다. 10대에 겪은 아픈 첫사랑과 슬픈 가족사를 다룬 이 소설의 내용은 대담했고, 사회적 통념을 깬 명작이었기에 1992년 장 자크 아노 감독을 통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소설의 화자인 소녀는 베트남에서 학교에 다니는 프랑스인이다. 이질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의 빈 자리를 큰아들이 채워주길 바랐던 엄마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큰 오빠는 마약과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다. 엄마의 사랑에서 비껴간 나약한 작은 오빠. 점차 광기로 변해가는 엄마, 소녀의 가족은 소설 속 표현처럼 점차 돌로 변해간다.

어떤 접근도 불가능한 두꺼운 퇴적물 속에서 화석이 되어버린 그런 가족 말이다. 그리고는 자살을, 혹은 살인을 기도하기에 이른다. 그러다 그를 만난다. 까만 리무진을 탄, 열다섯 살 반의 그녀를 오롯이 사랑해줄 중국인 남자를.

"온몸에 퍼붓는 입맞춤이 나를 울게 만든다. 그 입맞춤이 위로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울지 않는다. 그날 그 방 안에서 눈물은 과거를 달래주었고, 미래 역시 달래 주었다. 나는 그에게 언젠가 어머니와 헤어질 것이라고. 언젠가는 어머니에 대해서 더 이상 사랑을 품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운다. 그는 나를 베고 누워, 울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함께 운다."

▲ 연인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
▲ 연인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

탈출구가 없는 절벽에서 소녀의 손을 잡아준 이는, 그리하여 소녀에게 꿈을 꾸게 한 이는 첫사랑이었다. 작가를 꿈꾸었던 소녀는 가족이 주지 못한 예상치 못한 사랑을 통해 그 길을 걸어간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양지로 나올 수 없었다. 음지로 숨어들어 욕망을 해소하며, 점차 깊은 관계로 발전해가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운명 앞에 놓인 이별이라는 강을 건너고 만다.

소녀는 첫 관계에서 고통스럽지만, 점차 쾌락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난생처음 하는, 숱하게 상상하고 그려왔던 그 일이 바로 현실로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상대의 심장 박동 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먹먹할 정도였던 숨 막힘의 시간을 넘어, 욕망의 강을 건너야 하는지 아니면 얼른 돌아서야 하는지 숱한 망설임을 잉태한 헷갈림을 지나, 뜨겁게 앞을 향해 헤엄쳤으나 제자리에서 맴돌 수 밖에 없던 어눌함의 시간으로 가득했던 그 첫 번째 섹스의 기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러나 달콤한 와인과 더 달콤한 음악으로 로맨틱하게 시작하리라 다짐했던 그 일은 결코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마치 햇빛이 쨍쨍 머리를 쇠처럼 달구던 그 순간, 갑자기 퍼붓는 소낙비처럼 매우 빠르게 왔다 빠르게 끝나는 게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 첫 섹스의 모습이다. 허무와 고통과 혼란을 일으키는 첫 섹스는 언제나 편집하고, 왜곡하는 것을 즐기는 뇌의 특성으로 인해 아련한, 결코 다시는 맛볼 수 없는 쾌락으로 아름답게 포장되곤 한다.

아직 섹스의 욕망 앞에서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청춘들이여. 사랑의 질주가 아닌 이상, 감히 사랑이라고 큰소리로 외칠 수 없다면 그 끈을 절대 놓지 말기를. 그러나 사랑이라면, 그것도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순간이라면 더욱 대담하게 소통하시길. 그래서 처음부터 섹스가 주는 긍정적인 기쁨을 만끽하시길 ···.

■ 이지운 작가·시인 = 광고·홍보·전시 등 영상 시나리오 1000편 이상을 쓴 전업작가로 <서정문학> 제59기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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