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오릉 역사탐방길에 멧돼지 출현시 대처방법을 알려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봄날씨에 지난 주말 지인과 역사탐방길에 나섰다. 서울 서쪽과 경계를 이루는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서오릉'. 구리시 동구릉 다음으로 큰 조선왕조의 왕실 족분군이다. 숲이 울창해 인근 주민들이 아침 저녁 산책코스로 즐겨 찾는 곳이다. 입장객을 위한 매표소 변경 공사가 깔끔하게 마무리 돼 있었다. 매표소 관계자는 "평일에도 많은 관람객들이 입장한다"고 했다.

매표소를 지나 익릉(제19대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을 지나면서 능과 어울리지 않는 '수상한'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멧돼지 출현 유의사항'. 이런 현수막이 가는 곳 중간마다 걸려 있었다. 대빈묘(희빈장씨묘) 앞에도 버젓이 걸려 있었다. '멧돼지를 주의하라'는 현수막이야 쉽게 볼 수 있지만 '대처법'을 두고 탐방객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현수막에 적힌 대처법은 이랬다. (멧돼지를 만나면)  조용히 물러서서 자리를 피하고, 공격적 자세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멧돼지와 가까운 경우 나무 위로 올라가고, 주위 나무, 바위 등 은폐물에 몸을 숨기라는 것이다. 우산이 있을 경우, 공격하는 멧돼지 앞에서 순간적으로 우산을 펼치면 바위로 착각해 멈춘다는 것이다.

이런 현수막이 걸렸다는 자체가 '멧돼지가 출현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몸이 오싹했다. 서오릉 역사탐방길은 장애인을 비롯해 유치원 아동까지 이용하는 곳이다. '현수막 안내문으로 대처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비상전화기 한대도 보이지 않았다. 현수막을 걸어 두었으니 '탐방객은 스스로 안전을 지키라'는 의도로 보였다. '안전불감증이 도를 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세이프타임즈 윤성호 기자

관람객 배모씨는 "표지옆 곳곳에 멧돼지 퇴치용 장대라도 비치했으면 좋겠다"며 "관람객의 안전을 생각지 않는 문화재청의 태도가 한심하다"고 꼬집었다. 최근 도심 한복판까지 멧돼지가 출현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잡식성 포유류 멧돼지는 지난 1월 3일 서울 은평구 연신내 성당 인근에도 나타났다. 경찰 순찰차의 앞 범퍼까지 들이 받을 정도로 간단한 동물이 아니다.

환경부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멧돼지 출현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34건이라고 발표했다. 멧돼지 공격을 받아 4명은 목숨을 잃기도 했다. 멧돼지 습격은 어느곳에서도 일어 날 수가 있다. 무사안일한 문화재청이 조선왕릉 역사탐방길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누군가 멧돼지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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