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발생한 포항지진으로 2018학년도 수능시험이 연기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국가적 행사로 인해 수능이 몇 차례 연기된 적은 있었지만 자연재해로 인한 전격적인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기에 지진사태에 버금가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수능은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하나의 과정에 다름 아니다. 수능연기가 이처럼 큰 뉴스가 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대학입시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수험생과 학부모에게는 거의 전부이자, 모든 것인 수능을 앞두고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 14일 새벽 경기 성남 모아파트 화재사고로 어머니(47)와 수험생 딸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숨진 수험생이 '서울 명문대' 수시 전형에 합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부 언론은 '명문대 합격생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에 네티즌들은 수험생의 죽음은 물론 안타깝지만 거기에 왜 '서울 명문대'가 강조되어야 하는지 비판하는 댓글을 달았다.

'서울 명문대'라는 상징적 가치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다수 젊은이들이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언론이 가뜩이나 힘든 청춘들에게 또 하나의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지난 19일에는 현장 실습생인 이민호(18)군이 열여덟번째 생일을 불과 나흘 앞두고 기계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평소에도 잦은 기계고장으로 힘들어했고, 하루 11~12시간을 일해 몸까지 지친상태에서 기계를 수리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 김춘만 논설위원

언론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보다는 특성화고에 입학, 어린 나이에 취업을 나가 사고를 당한 이군을 감성적인 논조로 다루기 바빴다.

네티즌들은 이 군의 죽음을 당당하게 자신의 적성과 꿈을 위해 현장에 뛰어든 젊은이의 죽음으로 평가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 여론을 주도한다는 언론이 여전히 젊은이들의 삶을 대학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최소한 남보다 뒤처지지 말고 사회적으로 강자가 돼야 대접받는다'는 어른들의 논리가 고스란히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나쁜피'로 전이되고 있다.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다보면 '동굴의 비유'가 나온다. 동굴 속에서 벽면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사람이 뒤에서 비추는 빛에 투영된 그림자가 자신의 본질이고, 동굴 안 이 세계의 전부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평면적이고 획일적으로 만드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이 땅의 젊은이들을 모두 동굴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강원도 삼척에 '죽서루'라는 누각이 있다. 특이한 것은 기둥이 모두 고르지 않고, 지형에 맞게 들쑥날쑥하게 세워 놓았다는 점이다. 덤벙덤벙 놓았다 해서 '덤벙 주초'라 하는데 부조화 같지만 터에 맞게 기둥의 길이를 달리하는 여유로운 안정감이 있다. 이같은 공법은 흔들림에도 강해 굳이 내진설계를 고민할 필요도 없다.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온 말이 있다. 제갈량이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쓴 <계자서(誡子書)>에 담긴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이라는 구절이다. '마음이 담백해야 뜻이 명확해지고, 생각이 편안하고 안정돼야 뜻을 길게 가져갈 수 있다'는 말이다.

젊은이들이 여유로움과 다양한 사고력, 화합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경쟁심과 조급함, 단편적 지식으로만 무장하고 살아간다면 이 땅의 미래는 과연 희망적일까.

입시가 전부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가치가 우선시되는 현실을 만들지 않는다면 지금 '헬조선'을 외치고 있는 젊은이들이 차후에는 '탈조선'을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땅이 흔들리면 중심을 잡고, 건물이 무너지면 보수를 하면 된다. 그러나 사람이 무너지면 이 땅의 미래와 희망도 영원히 사라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때다.

■ 김춘만 논설위원 = 세이프타임즈 10기 기자스쿨을 수료하고 생활안전에디터에 이어 논설위원으로 재능기부 하고 있다. 행정학과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주)현대포스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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