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밭에 서서 바람을 맞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바람은 고주파와 저주파 등 온갖 소리를 고르게 담아 오기 때문이다. 파도의 철썩임이나 숲속 바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런 소리를 '백색소리'라 한다.

반면 특정 주파수를 가진 소리는 듣는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 옛 속담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라'는 말이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속담에 불과하고 귀는 양쪽에서 모든 소리를 가감 없이 듣는다. 그래서 귀는 눈만큼 피곤한 기능을 담당한다.

▲ 김춘만 논설위원

한 동안 CD에 밀려 설자리를 잃었던 LP판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함께 녹음된 주변의 잡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오히려 편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절대 음질을 만들어 낸다는 CD를 한참 듣다보면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적당히 어우러진 잡음은 소음이 아니라 화음으로 들릴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소리는 함께 어우러짐에 그 가치가 더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지난달 12일부터 시작된 2017년 국정감사가 종반에 이르고 있다. 성실히 국감에 임한 의원도 많지만, 개인의 과시와 치적을 남기려는 공허한 소리들이 퍼져 나오기도 했다.

특히 지난달 30일 네이버와 삼성국감은 많은 기대와 화제를 뿌렸다. 무엇보다 은둔의 경영자라는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 GIO(글로벌투자책임)의 등장부터 관심을 증폭시켰다.

올해 상반기 기준, 점유율 87%를 넘나드는 독보적인 영향력의 포털이기도 했지만, 네이버의 언론기사 배치의 영향력이 그만큼 막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원들의 질의는 한 숨이 절로 나오게 했다. 대부분 주어진 시간안에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자 다소 긴장했던 이해진은 시간이 갈수록 "검토해 보겠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질문은 있되 듣지는 않는 상황이 계속되자 증인으로 나온 삼성전자 고동진 사장은 "집에 가도 되느냐"고 국감사상 초유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 편의 코미디가 진행된 것이다.

지난 6일 진행된 청와대 고위 관계자 국감에서도 코미디는 이어졌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은 "청와대에 주사파와 전대협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인사 참사와 안보, 경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며 맞받아쳤다. 국정감사의 권위와 의원의 자질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불편한 주파수의 소리도 자주 들으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 소음이나 기계음은 아무리 자주 들어도 좋은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한 가지 성질의 주파수를 집중적으로 내보내기 때문이다.

국감뿐 아니라 청문회에서도 반복되는 의원들의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질문이 익숙하지만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하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보금자리를 찾아간다는 입동이다. 천지를 아름답게 물들인 단풍이 모두 지면 이제 그 자리를 하얀 눈이 대신할 것이다. 회색빛 앙상한 가지에 얹힌 흰 눈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주고 보는 눈도 즐겁게 한다.

우리 귀도 올 겨울에 는 백색소리만을 듣는 호강을 누렸으면 좋겠다.

■ 김춘만 논설위원 = 대학에서 기계공학과 행정학을 전공했다. (주)로테코 기술이사를 역임하고 (주)현대포스를 창업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세이프타임즈 제10기 기자스쿨을 수료한 뒤 생활안전에디터에 이어 논설위원으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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