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입산 막을 법적 근거 없어 '안전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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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산행을 즐기는 직장인 이모(47·청주시 산남동)씨는 지난 주말 가을 단풍도 구경할 겸 인근 구룡산을 찾았다가 아찔한 경험을 했다.

별다른 생각없이 시선을 바닥에 두고 등산로를 따라 걷던 중 갑자기 튀어나온 자전거와 충돌할 뻔 한 것이다.

자전거를 피하느라 휘청했던 이씨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주위를 둘러봤을 때 문제의 자전거는 뿌연 모래바람만 남긴 채 이미 사라진 뒤였다.

이씨는 "자전거와 부딪히거나 등산로 밖으로 넘어져 낙상이라도 했다면 어쩔 뻔했느냐"며 "발 디딜 틈 없는 단풍철 주말에 자전거로 산을 오르는 건 누가 봐도 민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을철 산을 찾는 행락객이 급증하는 요즘 등산로에서 무분별하게 산악 자전거를 즐기는 '바이크족'이 등산객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 자전거 인구는 1천3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역동적인 라이딩으로 스릴과 재미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산악자전거는 국내 자전거 시장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보급률이 해마다 늘고 있다.

하지만 마니아층이 느는 만큼 사고도 급증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산악자전거로 인한 부상 발생률은 약 30%로, 평균 자전거 사고(20%)보다 훨씬 높다. 또 발생 후유증의 심각 수준도 '보통 이상'이 60.9%로 일반 자전거 부상보다 치명적이다.

전문가들은 사고 예방을 위해 입산객과 하산객이 붐비는 오전 9시부터 11시 사이와 오후 1시부터 3시 사이의 시간대는 라이딩을 피할 것을 권장한다.

그러나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비좁은 등산로를 활보하는 일부 산악 자전거족은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지만 이런 무질서한 산악 자전거를 막을 법적 근거는 없다.

현행법상 자전거는 입산 금지 대상이 아니다.

이렇다 보니 안전 대책을 요구하는 일반 등산객들과 여가 활동의 자유를 보장해달라는 자전거 동호인들 간 입장이 정면으로 충돌하기 일쑤다.

청주 상당산성 옛길이 대표적인 사례다.

청주시는 2014년 4∼10월 국비 6억원 등 16억원을 들여 명암약수터에서 상당산성 입구까지 2.5㎞ 구간의 상당산성 옛길을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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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산책로로 조성한 이 길에 자전거 동호인들이 몰려 불편을 호소하는 보행자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청주시는 상당산성 옛길 곳곳에 '자전거 진입 금지' 현수막을 내걸고, 주말과 휴일 자전거 이용자들을 상대로 캠페인을 벌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양성을 무시한 처사"라며 "자전거 통행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자전거 동호인들이 들고 일어섰다.

진통 끝에 청주시는 이 길의 원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지난해 9월 상당산성 옛길을 도시 계획상 보행자 전용도로로 지정했다.

이후 자전거 동호인들이 상당산성 옛길을 점령하는 일은 사라졌지만, 관리·감독이 소홀한 틈을 타 일부 자전거족이 여전히 이 길을 이용, 사고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청주시 관계자는 "법적으로 자전거 입산을 막을 수 없는 상태에서 계도요원을 붙박이로 둘 수도 없어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한 교통 전문가는 "도로에서 보행자를 보호하는 게 운전자의 기본 의무이듯 산악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은 등산객을 보호해야 한다"며 "좁은 등산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것은 도로에서 보행자 곁으로 자동차를 몰고 가는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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