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문가의 전문가 죽이기

나도 너만큼은 알아. 정보의 홍수속에 모두가 전문가인 양 행세하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말이다.

박식(薄識)으로 무장한 가짜 전문가들로 인해 전문가들이 몰락한 현대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지적한 책이 출간됐다. <전문가와 강적들 : 나도 너만큼 알아>(오르마 펴냄ㆍ1만8000원)

미국의 러시아 문제 전문가 톰 니콜스는 '비전문가들'이 러시아에 대해 자신을 가르치려 하는 현실에 화가 나 이 책을 쓰게 됐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대중들이 더 이상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전문가와 전문지식을 혐오하게 된 세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렇게 전문가와 전문지식을 인정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 사회가 포퓰리즘이나 기술관료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포털 검색 몇 번이면 누구나 어떤 문제에든 나름대로의 전문가로 행세할 수 있다. 유명인들도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들의 영향력은 점차 확대돼 전문가를 대신해 잘못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렇게 전문가를 못 믿게 된 이유에는 인터넷, 대학교육, 신(新)저널리즘이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몇 번 검색해 봤다고 본인이 전문가라고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글의 90%는 쓰레기라는 '스터전의 법칙'처럼 인터넷에는 나쁜 정보와 설익은 생각들이 넘쳐나고 있다. 또한 '확증편향'에 의해 우리가 이미 믿기로 한 것을 확인해 주는 정보만 찾는다.

무늬만 종합대학들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학점과 학위를 남발하고 있다. 비판적인 지식인을 기르기보다 고객인 학생들의 근거없는 자존심을 부추기는 데에 급급하고 있다.

언론은 독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팔릴 만한 뉴스에 치중하고 있다. 정치토론, 건강 프로, 증권 프로 등에서 어설픈 전문가들이 쏟아내는 가짜 정보에 대중들은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전문가라는 오해 속에 진짜 전문가들의 설자리가 없어졌다고 본다. 전문가들이 간혹 실수를 저지르기는 하지만 그들의 실수는 우리의 실수에 비해 매우 작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여기에 전문가들을 살려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 "일반인들은 민주시민으로서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전문가들은 사회의 하인으로서 자신의 충고가 다른 이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며 전문가와 강적들 사이를 조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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