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노벨생리의학상은 생물에 24시간 주기, 생체리듬(circadian rhythm)을 최적화하는 생체시계를 통제하는 유전자 존재를 밝혀 낸 3명의 미국 교수에게 돌아갔다. 

연구에 따르면 모든 생물은 24시간 주ㆍ야간 주기, 즉 생체시계(서캐디안리듬)의 의해 움직인다. 특히 인간의 몸은 이 생체시계에 맞춰져 있다. 생체시계는 행동, 호르몬 수치, 수면, 체온 및 신진대사와 같은 중요한 기능을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위원회는 생체시계의 만성적인 불일치가 다양한 질병의 위험성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점도 가리킨다고 강조했다.

간단하게 이야기 하면 인간은 주간에 활동하고 밤에는 숙면을 취하는 일주에 생체리듬이 맞춰져 있다. 이 리듬이 깨질 경우 피로에 의한 주의력 결핍, 우울증, 당뇨병, 만성질환 등 다양한 질병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이들 교수의 연구에 주목하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직업군 중에 생체리듬을 주기적으로 교란받는 직업군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직업상 생체리듬을 교란하는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돼 각종 질병에 무방비한 상태로 놓여 있다는 점이다.

야간근무를 정상근무처럼 반복하는 직업군이 생체리듬을 주기적으로 교란받는 직업군이다. 그 중심에 소방공무원이 있다. 소방관은 365일 근무를 한다. 그들에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소방관 평균수명 58세, 연평균 순직자 5.4명, 공상자 326명, 2012~2016년 소방관 자살자는 38명에 달한다. 소방관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논하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평균수명 58세다.

58세 평균수명은 46년전인 1971년 대한민국 평균수명에 해당한다. 2017년 대한민국 소방관들은 46년전인 1971년 평균수명에 머물러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행정안전위원회)은 2016년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한 소방공무원 4만840명 가운데 68.1%인 2만7,803명이 질병으로 진전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보여 관리가 필요한 '건강이상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38명의 자살자 가운데 55.3%인 21명이 신병비관이나 우울증으로 숨졌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 IARC가 2007년 소방관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를 보면 소방관이 처한 근무환경을 발암물질 생성가능인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 위험성은 암발생물질 2군으로 분류했다.

얼마전 동료 소방관이 췌장암 발병 1년6개월만에 숨을 거뒀다. 많은 소방관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열악한 소방공무원 근무환경 문제를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의 연구결과인 '야간근무를 반복함으로써 생체리듬이 파괴되는 근무환경이 중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그 원인을 찾는 것은 무리일까.

이를 인정하는 법원의 판결도 있다. 2008년 덴마크 직업병 판정위원회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결정을 내린다. 야간근무를 포함한 교대제 근무를 발암물질로 인정했다. 1주일에 한 번 이상 20년에서 30년 가량 야간근무를 했던 여성 노동자에게서 발생한 유방암을 직업병으로 인정하고 국가가 보상하라고 판정했다.

▲ 고진영 전 소방발전협의회 회장

외국뿐이 아니다. 2014년 8월 대한민국 법원은 27년간 주ㆍ야간 근무를 하다 심근경색으로 요양급여를 신청한 박모씨의 요청을 거절한 근로복지관리공단에 주ㆍ야간 교대근무를 오랜기간 하다가 노동자가 병을 얻었다면 갑작스러운 과로가 아닌 일상적인 수준의 업무 중이라도 이를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2017년 소방공무원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떨까. 24시간 교대근무에서 3교대로 변환될 당시 소방지휘부는 "그럼 잠을 재우지 말아야 한다"며 "대기실을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지하고 살인적인 이야기다.

업무 성격상 야간근무를 할 수 밖에 없는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체시계를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휴식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때문에 '당비비', '4조2교대' 등 충분한 휴식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근무방식을 소방관들은 주장하고 있다. '생명권'을 확보하고자하는 치열한 외침이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Dr. Linda Glazner 박사에 의해 "교대근무가 소방관들에게 미치는 영향(1996), 미국 소방공무원의 부상과 관련된 진실(1996)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야근근무로 인한 소방관의 근무환경이 미치는 위험성을 논의하고 개선해 왔다. 

대한민국 소방관의 목숨을 노리는 것은 재난현장의 위험성뿐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야간근무가 소방관도 모르게 그들의 목을 조르고 있다.

소방공무원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겠다며 수많은 이야기들이 논의되고 논란도 많다. 하지만 문제를 인식하는 출발점이 표면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

소방관이라는 하나의 개인이 직업상 운명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일할 수 밖에 없는 희생을 강요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치적 가치, 경제적 이익, 조직의 이익이 버젓이 진실처럼 공방을 벌일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공무원인 소방관도 그런데 다른 직종 야간근무자의 형편은 어떨까. 오늘도 대한민국의 밤을 밝히며 야간근무를 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와 자신의 생명의 심지를 태워가며 근무하고 있는 소방관들이 있다.

모든 국민에게 묻고 싶다. 대한민국 근로환경, 보건환경은 안전합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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