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축구 선수 가운데 스타 한 명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이영표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2002 한일월드컵을 주름 잡았던 스타플레이어가 많은데 왜 이영표인가. 그는 화려한 공격수도 치열한 중원을 누비는 미드필더도 아니었다. 수비를 잘하는 부지런한 선수였다.

강원도 홍천 출신인 이영표는 안양초중고를 거쳐 건국대 졸업후 2000년 안양 LG(현 FC서울)를 통해 프로에 데뷔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통해 이름을 알린 그는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유럽무대에 진출, 한국축구의 위상을 알리게 된다. 네델란드 에인트호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을 거쳐 북미 MLS에서 활동했다.

이영표는 특유의 '헛다리 짚기' 드리볼로 유명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데뷔전때 세계적인 선수들도 드리볼의 방향을 가늠치 못해 엉덩방아를 찧었다. 재치있는 순간돌파, 화려한 드리볼, 스피드가 주무기였다. 대표팀 체력테스트에서 최고점을 받을 정도로 '무쇠체력'을 자랑했다. 공격시에는 상대의 측면을 교묘히 파고드는 돌파력은 유럽 무대에서도 증명됐다. 화려한 테크니션이었다.

▲ 은서기 정보기술안전부 IT팀장ㆍ경영학 박사

그러나 운동선수는 나이가 들면 체력의 한계 때문에 은퇴를 하게 된다. 이영표도 2013년 11월 한국과 스위스 친선경기를 마지막으로 27년 축구인생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화려했던 선수 대부분은 은퇴후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곧 인기도 떨어진다. 일부는 감독, 코치 등의 지도자로 변신하지만 대부분은 대중의 기억속에 사라진다.

그러나 이영표는 축구해설가로 '제2의 축구인생'을 살고 있다. 새로운 축구인생이 어찌보면 현역시절보다 더 인기를 얻고 있다.

그의 주옥같은 말 한마디가 '어록'이 되고 있다. 최고는 2014 브라질월드컵이다. 그는 "월드컵은 경험을 쌓으러 나오는 게 아니라, 증명하러 나온다"고 했다.

대표팀이 16강에서 고배를 마시자 "경험했다는 게 좋은 의미가 있지만 월드컵은 경험보다는 보여주는 자리"고 일격을 가했다. 27년 동안 축구만 생각하며 살아 온 그가 '체험'을 통해 던진 한마디는 팬의 마음을 꿰뚫기에 충분했다.

대한민국 축구발전을 간절히 원하고,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그는 명축구해설가로 변신했다. 중요한 것은 멋진해설을 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하고 공부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점이 축구팬을 더 즐겁게 하고 있다. 정곡을 찌르는 이영표의 해설은 축구를 보는 재미를 더해 준다.

축구에서 해설은 비즈니스에서 프레젠테이션과 같다. 그는 축구만 잘했던 선수가 아니라 '프레젠테이션의 달인'으로 변신했다. 그래서 이영표는 은퇴 후에도 여전히 스타다.

■ 은서기 정보기술안전부 IT팀장 △서울시립대학교 경영학박사 △PMPㆍITㆍ프레젠테이션 코칭 전문가 △사이경영 연구가 △삼성SDS 베스트 프레젠터 심사위원 △삼성SDS PMㆍ수석컨설턴트 △법무부ㆍ문체부ㆍ국민건강보험공단ㆍ해양경찰청 PM △대우전자ㆍ대우정보시스템 SE △저서 <1등 프레젠테이션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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