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많은 것을 풍성하게 하지만 사람의 마음만은 헛헛하게 하는 요상한 계절이다.

옷이 한 겹 두꺼워질수록 쓸쓸함의 공간은 그만큼 넓어진다. 그래서 가을은 어느 싯구처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그리운 사람을 더욱 그리워'하게 되는가 보다.

해마다 명절이면 고향 가는 길은 그야말로 '전쟁길'이다. 많은 고속도로가 생기고, 수많은 국도가 정비되었다하지만 여전히 고향길은 '고난'이다. 명절문화가 많이 달라져 역귀성객들이 많아졌다 해도 오르내리는 길 모두 주차장으로 변하는 것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래전 그런 북새통에 동참하던 때가 있었다. 결혼초 추석명절, 처가가 있는 전남 '땅끝마을' 해남까지 가는 길은 조금 과장하면 '사투'였다. 나주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다르면 영암 풀티재에서 또 한번 발이 묶였다. 월출산이 그렇게 아름다운 산 인줄은 당시에는 몰랐다. 그저 앞 차 꽁무니가 움직이길 간절히 바라며 20여시간의 '피란길' 같은 경험을 했다.

▲ 김춘만 세이프타임즈 생활안전에디터

1967년 경인고속도로로 시작한 고속도로 역사는 사실상 1970년에 개통한 경부고속도로가 그 막을 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듬해 호남고속도로가 연결되고, 영동과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며 귀성길 숨통을 다소나마 틔어 놓았다. 지금은 연장 4000km가 넘게 전국을 바둑판처럼 연결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귀성 길은 지치고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는 길 보다는 고속도로를 선호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점과 점사이의 최단거리는 직선이다'는 수학적 명제에 익숙해진 탓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추구하고 정답이라고 하는 '각박함'이 귀성길 에도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돌아가면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 우리를 맞이한다. 빨갛게 익어가는 감나무와 차창 밖으로 도열한 코스모스의 군무도 눈에 담을 수 있다. 허름한 시골 맛집에서 새로운 미각을 즐길 수 도 있다. 개울가에서 상큼한 가을바람을 만끽할 수 도 있다.

도시에서 지치고 허둥대던 마음을 식힐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생활전선의 연장 같은 고속도로에 갇혀 있어 안타깝다.

올 가을은 많은 것이 심란하다. 눈만 뜨면 북한과 미국과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10월 위기설'까지 등장하고 선전포고, 군사적 옵션 등 핵폭탄 만큼이나 무서운 난타전이 벌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일들이 바로 우리 삶, 조상의 혼,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이 땅을 무대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슴 떨리고 두려운 일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남의 일 구경하듯 하고 있다.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꽉 막힌 도로에서 대책없이 있을 수도 있고, 새로운 길을 찾아 원하는 목적지에 이를수 도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명을 담보로하는 위험천만한 일련의 한반도 정세도 한가지 길만 고집하지 말고 모두에게 최선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할때다.

올 추석에는 우리의 삶도 보다 여유롭고 풍요로워지고, 이 땅에도 '죽음의 백조'가 아닌 '평화의 백조'가 날기를 희망한다.

■ 김춘만 생활안전에디터 = 대학에서 기계공학과 행정학을 전공했다. (주)로테코 기술이사를 역임하고 (주)현대포스를 창업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세이프타임즈 제10기 기자스쿨을 수료한 뒤 생활안전에디터를 맡고 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언론 세이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