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액 30% 줄고 출하 가격도 30∼40% 급락

▲ 서양란 살펴보는 농민 충북 음성군 대소면 유리온실에서 박한흥(82)씨 부부가 서양란을 살펴보고 있다.

"25년째 화훼농사를 하면서 요즘처럼 힘들었던 경우는 처음입니다"

충북 음성군 대소면 유리온실(1300㎡)에서 서양란을 키우는 박한흥(82)씨의 얼굴에는 시름이 그득했다.

'투명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도입된 부정청탁과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의 후폭풍이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농원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이 법에 걸리지 않는 작은 선물조차 주고받지 않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매출이 청탁금지법 시행 전보다 30%가량 줄었다.

청탁금지법상 공직자가 직무 수행과 관련해 예외적으로 받을 수 있는 상한액은 음식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인 데도 난(蘭) 시장의 'VIP 고객'이었던 공무원들이 구설에 오르는 것을 피하려고 아예 난 선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위축된 화훼 소비 활성화를 위해 꽃에 대한 국민인식 개선과 꽃 소비촉진 공익광고까지 하고 있지만 위축된 소비 심리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박씨는 "관공서, 공공기관, 대기업의 인사철이 대목인데 사회 전반에 화훼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인건비도 못 건지고 있다"며 "5∼6000원 하던 출하 가격(상품 1그루 기준)이 1년 전보다 1∼2000원 떨어졌다"고 탄식했다.

청탁금지법으로 직격탄을 맞은 농민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겠다는 청탁금지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서는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법을 만들기 전에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꼼꼼히 따져봤어야 하는 데 그런 과정이 없어 농민들이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 위축→가격 하락→출하량 감소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품종을 바꾼 화훼 재배농가도 늘고 있다는 게 박씨의 전언이다.

박씨는 "이 마을에서 3개 농가가 난을 재배했었는데 청탁금지법 이후 2개 농가가 품종을 관엽식물로 바꿨다"며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선물용 난을 키우는 농가는 살아남기 어렵게 됐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 관엽식물

음성 화훼유통센터 경매장의 난 판매량도 계속 감소하고 있다.

지난 2월 20만1000여 그루였던 난 판매량이 지난 7월에는 11만여 그루로 45% 떨어졌다. 지난 8월 판매량도 12만5000여 그루에 그쳤다.

관엽식물 판매량도 지난 3월 69만3000여 그루에서 지난 7월에는 12만3000여 그루로 줄었다. 지난 8월 판매량(18만3000 그루)도 지난 3월의 26% 수준에 불과하다.

이 센터 관계자는 "난과 관엽식물 판매량이 줄어든 대표적인 원인이 청탁금지법에 따른 공직사회의 몸조심"이라며 "어려움을 겪는 농가를 살리기 위해 청탁금지법의 선물 가액 상한액을 10만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음성에서 관엽식물을 키우는 한모(45)씨도 "지자체가 (꽃 주고받기를 꺼리는) 공직사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이벤트를 벌이는 것도 판로가 막혀 어려움을 겪는 화훼농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이 지역 대표 화훼 중 하나인 접목 선인장은 청탁금지법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있다.

음성에서 선인장 농원을 운영하는 김모(60)씨는 "접목 선인장은 거의 전량을 수출하기 때문에 청탁금지법과 상관없다"며 "공직사회 수요가 많았던 난 재배농가의 타격이 크다"고 안타까워했다.

일각에서는 청탁금지법에서 허용되는 예외적인 경우와 법에 저촉되는 사례를 공무원과 일반인들이 제대로 알 수 있도록 교육과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부서를 옮겼다는 음성군의 한 간부 공무원은 "(내가) 청탁금지법에 저촉될 것을 우려해 축하 화환을 보내지 않았다는 친구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화환을 보내는 것은 무조건 잘못이라는 인식 때문에 화훼농가가 피해를 보는 것 같다"고 청탁금지법에 대한 올바른 교육과 홍보 필요성을 강조했다.

▲ 접목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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