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강릉시 강문동 석란정에서 불을 끄다 순직한 강릉소방서 경포 119안전센터 소속 이영욱(왼쪽) 소방위와 이호현 소방사.

"동생은 소방관을 사랑했습니다. 소방관 꿈을 이룬 뒤 얼마나 좋아했는데 ···."

17일 강원 강릉 석란정에서 화재 진화 중 무너진 건물 잔해 등에 깔려 순직한 이호현(27) 소방사의 외사촌 형(37)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소방사의 친척과 지인 등에 따르면 그는 소방관이 되기 위해 원래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강원도립대학 소방환경방재학과로 편입학했다.

서울 노량진에서 학원도 다니며 수많은 공시생 틈에서 소방관의 꿈을 키웠다. 마침내 그의 꿈은 지난해 강원도립대 장학생 경력채용으로 합격하면서 실현됐다.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강원도 소방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지난 1월 9일 새내기 소방관으로서 첫 발걸음을 뗐다.

이 소방사는 꿈을 이루고 나서도 절대 나태해지지 않았다. 외사촌 형은 "소방관이 되고 나서도 '사고 없이 일하려면 체력관리가 중요하다'며 쉬는 날에도 축구와 등산 등 꾸준히 운동을 했습니다"라며 소방공무원으로서 투철한 직업 정신과 자부심을 가진 동생을 기억했다.

이 소방사는 가정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으나 착하게 자라 기특한 아들이었다고 한다.

집에서는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말도 없이 과묵했지만, 직장에서는 활발한 성격으로 매사에 적극적으로 근무에 임했다.

외사촌 형은 "꿈을 이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이 일어나 안타깝다"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다 희생했으니 좋은 곳에 가서 편안하게 쉬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후배들을 챙기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이 소방사는 지난 13일 오전 일찍 양양에서 근무하는 입사 동기와 함께 양손에 음료수와 빵을 한가득 들고 모교인 강원도립대를 찾았다고 한다.

소방공무원 꿈을 키우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발령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릉에서 대형 산불이 나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던 일, 소방관으로서 보람을 느낀 일 등을 이야기하며 자신과 똑같은 꿈을 키우고 있는 후배들을 응원하고 격려했다.

"강릉 출신이니까 강릉 전체를 책임지는 소방대원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런 제자를 황재호 강원도립대 소방환경방재학과 교수는 또렷이 기억했다.

황 교수는 "수업 중 화재 피난시뮬레이션으로 강릉의 대형 영화관에서 불이 난 상황을 가정해 발표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호현이는 수차례나 직접 지하 5층, 지상 8층에 달하는 건물에 직접 가서 어떻게 시민들을 대피시킬지 연구했다"며 "발표를 보고 훌륭한 소방관이 될 자질이 충분하다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 소방사는 후배들과의 만남 후에는 황 교수와 점심을 먹으며 "이제 결혼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스승의 물음에 "결혼을 생각하는 여자친구가 있다"고 조심스레 말하기도 했다.

황 교수는 "너무나 아끼는 제자 중 한 명이 갑자기 이런 일을 당해 너무 안타깝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이 소방사가 '든든한 아들'이었다면 그와 함께 현장에서 진화작업을 벌이다 순직한 이영욱(59) 소방위는 누구보다 '든든한 가장'이었다.

91세 노모를 모시고 있는 이 소방위는 아내(57)와 장성한 아들(36)을 둔 집안의 기둥이었다.

1988년 2월 1일 임용돼 투철한 사명감으로 햇수로 30년 동안 각종 재난현장을 누빈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책임감과 뛰어난 리더십은 물론 현장에서 항상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선후배들에게 신망이 두터웠고 표창장도 여섯 차례나 받았다.

센터 내에서 가장 맏형인 그는 새내기 소방관인 이 소방사와 늘 한 조를 이뤄 근무했다. 직장에서는 믿음직한 선배였고, 집안에서는 노모를 지극히 모시는 효자였다.

도 소방본부 관계자는 "순직 대원들은 우리의 아버지였고 아들이었다"며 "두 사람의 희생정신을 잊지 않고 영원히 소방인으로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순직한 두 대원의 빈소는 강릉의료원 장례식장 1관 1호실과 2호실에 마련됐다. 3호실에는 합동분향소를 마련했다.

믿기지 않는 두 사람의 사고 소식을 접한 동료와 지인들은 장례식장을 찾아 넋을 위로하고 있다.

조종묵 소방청장과 이흥교 강원도 소방본부장도 이날 사고 현장과 장례식장을 찾아 두 대원의 안타까운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두 사람의 영결식은 19일 오전 10시 강릉시청 대강당에서 강원도청 장(葬)으로 열린다.

영결식에는 가족과 동료 소방관 등이 함께한다. 소방청을 소관하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도 참석해 두 소방관의 영령을 위로한다. 고인은 영결식 후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관 묘역에 안장된다. 소방청은 순직한 두 대원에게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 추서를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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