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카잘리(Kim Casali)가 지은 <사랑이란(Love is ··· )> 만화가 있습니다. 1997년에 작고했습니다만, 뉴질랜드 태생의 만화가인 그녀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비서로 일할 때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약혼자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편지 끝에 그려 넣었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가 모태가 된 만화입니다.  

그녀는 한 컷짜리 만화로 '사랑이란 ··· '이라고 정의 내린 만화를 그렸는데, 예를 들어 '당신이 최고라고 말해주는 것', '흉 볼 때 조심하는 것' 등이 사랑이라고 말한 후, 이에 어울리는 그림을 한 컷으로 그렸습니다. 일부에서는 우리말 사랑이 '사량(思量)'에서 온 말이라고 합니다만, 그녀가 그린 만화를 보면서 '사랑에 대한 정의가 참으로 다양할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즐겨보는 성경에서 사랑에 대한 정의로 유명한 곳이 <고린도전서 13장>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우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랑(아가페)을 15개의 동사로 정의했는데, '오래 참고'로 시작해 '모든 것을 견딥니다'로 마치는 사랑에 대한 정의에서 그는 사랑의 본질을 '참고 견디는 것(인내)'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한 '참는다'는 말의 헬라어적 의미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지붕이 돼 준다'는 뜻이 있고, '견딘다'는 말은 '아래에 머물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정의한 사랑에는 '상대가 당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보고 혼자 떠나거나 도망치지 않고, 자신도 그 상황 아래에서 그와 함께 혹은 대신 머물면서 고통을 같이 감내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정의를 따라가 보면 사랑은 공감에 가깝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독실하게 따르면서 이웃이 힘들 때 그가 딛고 설 수 있는 발판이 돼주고,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실질적인 것을 지원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랑에는 감정만 들어 있지 않고 합리적 이성도 들어가 있습니다. 또 지나치게 유토피아적인 것도 아니기에 조금만 신경을 쓰면 누구나 곧바로 올곧은 의지를 가지고 이런 사랑을 실행에 옮길 수 있습니다.

▲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공동체 목사

또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성경에서 정의 내린 사랑의 관점으로 이해하면 다른 면도 보입니다. 이는 '내 안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라'는 말이 됩니다. 내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이 내 몸(마음) 어느 부분에서의 긴장, 혹은 아픔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인지 그곳에 온전히 관심을 기울여, 감정보다는 실질적인 지원을 그 부분에 하는 것이 성경적인 정의로 살펴본 '내가 나를 사랑하는 행위'입니다.

사랑은 감정의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그에게 다가가 그의 아픔에 공감하며 실제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의 대상이 '나'라고 하더라도 사랑의 행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외부의 고통에만 감성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 부분에 실질적인 지원을 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내가 지은 죗값에 눌린 내 몸(마음)의 신음소리를 잘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를 포함한 인간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내 안의 고통에 실질적인 지원을 하려면 나를 다르게 볼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맹목적 낙관이나 비관보다는 내가 지닌 고통을 현재는 객관적, 현실적으로 보되 미래는 낙관적, 희망적으로 볼 줄 아는 공감능력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ㆍ목사 = 한양대 전기공학과,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와 아나돗공동체 목사를 맡고 있다. 세이프타임즈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를 연재했으며 논설실장으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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