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무렵 울산에 있는 '듀폰 코리아' 긴급 설치공사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반드시 주어진 시간 안에 작업을 끝내야하는 '셧다운(Shut down) 공사'가 그렇듯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갔다. 아침에 밥을 먹으면 밥알이 모래알처럼 느껴지는 게 실감나는 '무박 4일'간의 치열한 작업이었다.

그런 험난한 일정 속에서도 단 한 건의 안전사고가 없었던 비결은 돌이켜 보건데 듀폰만의 철저한 안전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한다.

작업전 교육을 받고 안전구역을 설정한 후 작업승인이 떨어지면 공사에 들어가는 방식은 우리나라 대기업의 안전프로그램과 거의 같다.

그러나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는 몇 가지 점에서 우리와 달랐다.

무엇보다 듀폰은 형식적인 안전교육을 거부했다. 작업자들이 내용을 숙지하고 있는지를 꼼꼼히 확인한 후 작업을 허가했다. 단순히 시간만 이수하는 여타 기업들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물론 요즘에는 사전에 인터넷으로 강의를 수강한 후 시험까지 보고 합격증을 발행하는 국내 기업도 많다. 그러나 당시에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안전에 관한 부분은 작은 부분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쓰는 문화가 있었다. 메인 스위치를 올리는데 바닥에 감전 방지판을 깔고 마치 우주인 같은 복장을 한 책임자가 주위 사람들을 3m 이상 물리친 후에야 스위치를 올렸다. 대충 막장갑만 착용한 후 전기 작업을 했던 국내 문화로 보면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무업무에서도 철저하게 안전규칙을 지켰다. 커터 칼을 달라고 했더니 지정된 장소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테이블과 장갑이 준비돼 있었다. 커터 칼 하나 쓰는데도 안전장갑을 끼고 해야 했다.

그리고 의자도 반드시 두 다리를 지면에 대고 앉아야 했다. 지나치다 싶었지만,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가정에서의 안전까지 회사가 책임을 지는 문화가 있다. 가정에서 미끄럼 사고 등 안전사고가 나면 병원보다 회사에 먼저 연락을 한다고 한다. 이때 회사 안전팀이 파견돼 현장을 조사하고 문제가 있는 부분은 회사에서 수리를 해준다.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간부들과 이야기를 나눈 결과 사실이었다. 이처럼 듀폰은 안전을 회사와 가정에서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 김춘만 생활안전에디터

우리 회사는 장비를 만들어 설치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여러 회사의 안전규정을 접할 기회가 많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기업들의 안전조건도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

SOP(Safety of Plan) 제출은 기본이고 현장에서 안전에 관한 프레젠테이션까지 해야 한다. 이때 승인이 거부되면 작업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사고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이유는 안전의식이 평소에 문화로써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아무리 좋은 시스템과 교육 장치를 가지고 있어도 실제 작업자(외주업체)들의 안전의식이 평소에 습관화되지 않으면 한계가 있는것이다.

듀폰의 안전 문화를 돌이켜보며 안전의식이 필요할 때만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사회와 작업장, 가정 모두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야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상기해본다.

■ 김춘만 생활안전에디터 = 대학에서 기계공학과 행정학을 전공했다. (주)로테코 기술이사를 역임하고 (주)현대포스를 창업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세이프타임즈 제10기 기자스쿨을 수료한 뒤 생활안전에디터(시민기자)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언론 세이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