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위태롭다는 말이 시장에서 조차 중구에 회자되고 있다. 국민들의 일상이 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데도 침묵해야 하는가. 명색이 국가안보전문가로 반평생 청춘을 보낸 사람으로서, 퇴직후 조용히 후손들의 안전에만 전념하고 은거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요즘은 옛사람 고염무의 '천하흥망은 필부유책'이란 말이 종내 귀에 떠나지 않는다.

어제 조선일보 강천석 논설위원의 글을 논박한 뉴데일리 박성현 논설위원의 현란한 글을 읽고 생각이 많다. 무릇 사람은 사람마다 생각이 같을수도 다를수도 있고, 인인각색인데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덕분으로 누구나 나름 표현의 자유가 있어서 좋다.

세상엔 정의가 필요하고 가장 중요하다고 누구나 생각한다. 그러나 정의가 과연 얼마나 잘 지켜지고 항상 승리하는가.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힘이 정의이고, 무력함이 불의가 되고 마는 사정이 얼마나 허다한가. 유전무죄 무전유죄에서부터, 대기업, 강대국의 횡포를 보라. 자기자신, 자국의 이익과 수호에 혈안이다. 그렇기에 위대한 성인 공자도, 맹자도 다 뜻을 펼치지 못했다. 맹자의 철학이 서양의 장 자크 루소에게 전해져 서구민주주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세상의 모든 권력이나 이익이 따르는 곳의 현실적 사정은 공히 이러하다.

최근 한반도를 위요(圍繞)하고 있는 주변정세는 첨예하고 위태롭다. 북한도, 중국도, 러시아도, 일본도,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주력하고 투쟁하지 않을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은 적도 될 수도 있다는 정글의 법칙을 망각하지 말고, 적과 잠재적 적들의 입장을 통찰해야 한다.

김영배 세이프타임즈 고문(논설위원)

전국시절 손·오자병법의 지혜를 배워서라도 효과적 자위 수단과 노력으로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결코 두려워하지도 말자. 우스개소리지만 언젠가는 천하통일을 우리가 할 수도 있다. 약한 팀이 역전하고 수가 적은 군대가 전쟁을 이긴 사례는 수없이 많다. 징기스칸은 100만 인구, 10만 군대로도 천하를 쉽게 평정했다. 속된말로 머리는 모자쓰라고 있는게 아니다. 우리는 조상대대로 머리좋은 민족이다. 뜻을 모아 지혜를 짜내 당금의 위기를 탈출하자.

요즘 정계에서 회자되는 '양반집 도령'이란 말도 있지만, 구상유취 같은 어쭙잖은 백면서생적, 강단(講壇)이론적, 혹은 미담같은 비현실적인 태만한 발언이나, 방법론들은 망국의 지름길이다. 손자(손자병법)의 말대로 전쟁은 가벼이 해선 안되며 최후의 부득이한 수단이 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전쟁의 발단은 말 한마디, 말 한필 죽는데서도 쉽게 점화된다. 한번 총구가 겨누어지면, 무조건 나가 싸워야 하고, 이겨야만 한다. 송양지인(宋襄之仁) 같은 고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세상에서 유일하게 무조건 이겨야하는 처참한 것이 '피의 전쟁'이다. 그러나 전쟁이란 귀물(鬼物)은 회피하거나, 두려워하는 자에게 더 잘 따라 붙는 법이다.

정당간의 선거만해도 서로 이길려고 불법을 넘어 발악을 하고 있는데, 선거만 승자독식이 아니다. 전쟁이야말로 이기는 것 만이 정의가 되고 만다. 이민족간에라도 전쟁을 안하면 좋겠지만 인간들이 불의해서 그런지 동족간에도, 형제자매간에도 전쟁은 발생한다. 일단 개전되면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고 가벼이 말하지 말라. 의도적으로 걸어오는 전쟁이라면 무슨수로 피하겠는가. 5천만 국민의 목숨을 걸고 논쟁만할 건가. 임진왜란 때처럼. 수천년 전의 병법서에도 세상이 비록 태평해도 전쟁을 잊으면 나라가 위태롭다(天下雖安, 忘戰必危)고 한 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독립군의 노래도 잊어서는 안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때까지'. 이럴때일수록 감투(敢鬪)정신을 가져야한다. 국민과 군의 사기를 약화시킬 수 있는 발언이나 행위는 결코 옳지 않다. 저자세 모양의 외교로 전쟁을 막을 순 없다. 현실이 선거철이라 '솥뚜껑보고도 놀란다'는 속담처럼 과거의 불미스런 북풍사건들을 연상하고 염려할 수도 있겠으나, 이 상황을 북한이 스스로 조성했다는 불가피한 상황성을 인식해야 하고, 혹여 부화뇌동이나 준동하는 선거 파렴치범들이 있다면 국민의 눈으로 준엄하게 심판하면 된다. 우리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 안보와 선거는 분리될 것이다.

무슨 일을 할 때는 흔히들 방법론을 말한다. 그러나 그 방법론이란 게 딱 무색한 때가 있다. 공산주의자들과의 대화나 협상이 그렇다. 일방적인 주장, 상투적인 벼랑끝 전술, 불바다 협박 등등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상적인 사고를 하며 성장한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는 비상식적 사고와 행동들을 한다. 이런 집단의 사람들을 상대로 정책을 수립하고 전략 · 전술을 구사하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특히 북한정권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태도나 모습은 광기를 보이며, 그 극치를 이룬다. 정상적인 대화는 도저히 성립될 수가 없다. 불신의 극치 속에서 무슨 양호하고 우의적인 협상과 대화를 하겠는가. 선의도 결국은 악의로 변질되고, 상황은 늘 원점으로 환원되고, 무력강화의 시간벌기 영양보충 밖엔 안된다. 그래서 지금의 현상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그들이 과연 바뀔수 있을까. 백년하청(百年河淸)이란 말이 딱 적합할 것이다. 실정이 그런데도 어리석게도 유화적인 제스처만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두고보라. 만년 이용만 당하고 말 것이 자명하다.

이렇게 대화 안되는 적대적 북한, 통일 강대 한국을 바라지 않는 잠재적국일 수 있는 주변국들 속에서 우리의 생존의 길은 험난하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조용히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싸우면 시간을 허비하고 국력을 낭비시키며, 자중지란이 돼 결국 이적행위가 될 뿐이다. 적을 위태롭게 하고, 아군에 유리하게 해야 승리한다. 나라가 살고 나라가 존재해야 여도 야도 너도 나도 있다. 이같은 유사환경에서 잘 대응했다는 사례가 있잖은가. 이스라엘이다. 시사점이 매우 크다. 타산지석으로 배워도 쓸만하다.

북한동포는 사랑해야 하고, 언젠가는 합쳐야 될 분명한 우리 형제자매다. 그러나 엄연히 국체가 다른 현재의 북한군은 우리의 주적이다. 그 누구도 이점을 흔들거나 혼동하면 안된다.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냉철한 눈을 필요하다. 현실에 충실하고 현실을 통제할 수 있어야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현실에 서 있고, 미래나 이상은 먼 곳에 있다.

독립군가의 구절이 잠을 못이루게 한다. '원수들이 강하다고 겁을 낼건가. 우리들이 약하다고 낙심할건가 정의의 날샌칼이 비끼는 곳에 이길이 너와 나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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