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건부터 사우스캐롤라이나까지 1시간33분간 세기의 장관 연출

▲ NASA가 촬영한 오리건주 관측 개기일식[NASA]

"달이 태양을 덮고 있습니다(Moon blots Sun)."

미국 대륙 전역이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태양계의 슈퍼볼'로 불린 99년 만의 개기일식(皆旣日蝕·total solar eclipse)이 21일 오전 10시 15분(미 태평양시간ㆍ한국시간 22일 새벽 2시 15분) 미 서부 태평양 연안 오리건 주(州)부터 시작됐다.

상주인구 6천200명의 시골 마을 마드리스에는 10만여 명의 인파가 몰려 천체의 신비가 만들어낸 우주 쇼를 지켜봤다.

CNN, ABC, NBC, CBS 등 미국 주요 방송과 미 항공우주국(NASA)은 생중계로 시시각각 '세기의 일식' 순간을 전하느라 바빴다.

▲ NASA의 개기일식 생중계

◇ 역사상 가장 많이 관측된 '우주 쇼'

AP통신은 "1918년 이후 99년 만에 대륙의 해안에서 해안으로 이어진 개기일식이 96∼113㎞의 넓이로 미 대륙을 관통했다"며 "이번 개기일식은 역사상 가장 많이 관측된, 그리고 가장 많이 촬영된 천체 현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전했다.

개기일식 현장에 나온 오리건 과학산업박물관의 짐 토트 관장은 "쇼가 막 시작됐다. 오늘은 위대한 날"이라고 말했다.

와이오밍 주에서 개기일식을 관측한 천문학자 마이크 오리어리는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앞으로도 보지 못할 광경을 목격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일식은 태평양 시간으로 오전 10시 15분이 막 지나자 오리건 주 마드리스 등 주요 관측지역에서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면서 시작됐다.

▲ 오리건 주의 일식 관측 시점 어두워진 주변 [AP통신]

주변에 어둠이 깔리면서 관측지역에 몰린 인파에서 잇달아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일식이 가장 먼저 도달한 오리건 주 해안인 뉴포트에서 달이 태양을 가리는 순간을 포착한 관측자들은 "검은 원을 만들고 이어 그 주변으로 다이아몬드 링처럼 빛이 새어 나왔다"고 전했다.

주변이 온통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뉴포트 해변에는 섬뜩한 침묵이 잠시 이어진 다음 관측자들의 함성이 일제히 터져나왔다.

NASA의 알렉스 영은 "인간의 달 착륙과 비견될 만한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 2045년까지는 마지막 기회 ··· 일리노이서 2분 44초 '최장 관측'

이번 개기일식은 오리건, 아이다호, 와이오밍, 네브래스카, 캔자스, 미주리, 일리노이, 켄터키, 테네시,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14개 주를 관통하며 4천200㎞에 걸쳐 1시간 33분 동안 이어졌다.

개기일식의 통과 속도는 시속 2천100마일(시속 3천380㎞)로 측정됐다.

오리건 주 링컨시티부터 와이오밍 주 캐스퍼, 일리노이 주 카본데일, 테네시 주 내슈빌을 지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에는 동부시간으로 오후 2시 48분 개기일식이 관측됐다.

찰스턴의 관측자들은 미 대륙에서 개기일식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을 만끽했다.

▲ 오리건 주에서 관측된 일식 [AP통신]

사우스일리노이 주의 쇼니 국유림이 가장 오랜 시간인 2분 44초 동안 개기일식이 관측됐다.

켄터키에서는 태양의 외곽대기인 코로나가 선명하게 포착됐다. 뜨거운 가스를 내뿜는 코로나는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개기일식을 통해 그 화려한 모습을 드러냈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켄터키 주 일부 동물원에서는 개기일식이 임박한 순간 조류와 곤충류가 쉴 새 없이 지저귀고 울음소리를 내는 등 이상행동을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미 대륙을 관통하는 개기일식은 2045년 예정돼 있지만, 이번처럼 북서부에서 남동부로 대륙을 대각선으로 완전히 관통할지는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 개기일식 관통 경로

개기일식이란 우주 공간의 궤도 선상에서 태양-달-지구 순으로 늘어서면서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천체 현상을 말한다.

달이 지구를 공전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매달 일식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지구가 태양을 도는 궤도인 황도와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궤도인 백도의 각도가 어긋나 있기 때문에 부분일식은 자주 일어나지만, 개기일식은 통상 2년마다 한 번씩 찾아온다.

개기일식은 대부분 대양에서 관측되며 대륙에서 볼 기회는 흔치 않다. 특히 북미처럼 큰 대륙 전역을 관통하며 개기일식이 펼쳐지는 것은 수십 년에 한 번씩 일어난다.

미 전역을 관통하는 개기일식이 관측된 것은 1918년 6월 8일 워싱턴 주에서 플로리다 주까지 나타난 개기일식 이후 무려 99년 만의 일이다.

가장 최근에는 1979년에 부분적으로 미국 태평양 연안 북서부에서 개기일식이 관측된 적이 있다.

◇ 14개 주서 1천200만 명이 직접 관찰한 듯

이날 개기일식이 진행되는 동안 미 서부 지역은 대부분 쾌청했다. 중서부 일부와 남동부 찰스턴 등에 구름이 끼였으나 일식을 관측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미 언론은 개기일식이 관통한 14개 주를 중심으로 1천200만 명이 진귀한 현상을 직접 관측한 것으로 파악했다.

관측 명소로 분류된 지역의 공항에는 경비행기 수백 대가 뜨고 내렸으나 이날 오전까지 특별한 사고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앞서 지난 주말 오리건 주 마드리스 인근 공항에서 경비행기 한 대가 추락해 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오리건 주와 와이오밍, 켄터키 주 등에서는 고속도로 순찰대가 혼잡이 예상되는 구간에 집중 배치돼 사고에 대비했다. 일부 도로 구간에 혼잡이 있었으나 대형 사고는 보고되지 않았다.

중서부 일부 주는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고, 직장 근무시간대를 바꾼 곳도 있었다. 식당들도 개기일식이 진행되는 시간대에 한해 영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항공우주, 천문 등 과학계도 이번 개기일식의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 작업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NASA를 비롯해 미국 내 주요 연구기관들이 첨단장비를 총동원해 일식 순간을 포착했다.

앞서 1868년 개기일식 때 피에르 얀센이 헬륨가스를 발견하고, 1918년 일식 당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는 데 유력한 증거가 발견되는 등 과거 개기일식 때도 중요한 연구 성과가 있었다.

▲ 미국 대륙을 관통하며 관측되는 '개기일식'(皆旣日蝕·total solar eclipse)이 21일 오전 10시 15분(미 태평양시간·한국시간 22일 새벽 2시 15분)부터 시작됐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언론 세이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