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상드르 카바넬 '사형수들에게 독약을 실험하는 클레오파트라'

▲ 알렉상드르 카바넬 '사형수들에게 독약을 실험하는 클레오파트라', 1887년, Oil on canvas ⓒ 벨기에 안트베르펜 왕립 순수 미술관
▲ 알렉상드르 카바넬 '사형수들에게 독약을 실험하는 클레오파트라', 1887년, Oil on canvas ⓒ 벨기에 안트베르펜 왕립 순수 미술관

화면 후경에는 방금 죽은 시체가 축 늘어진 채 들려 나가고 있다. 조금 앞쪽엔 독약이 몸에 퍼져 고통에 몸을 비트는 인물이 보인다. 이를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왕, 클레오파트라. 연민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실험의 결과에만 관심이 있을 뿐, 표정 없는 얼굴은 현세를 초월한 조각상인 듯 신성마저 느껴진다.

독약의 종류와 효능에 관심이 많았던 여왕은 적잖은 사형수들을 독약의 효능을 실험하는 데 동원했다. 냉정한 시선으로 죽어가는 실험대상을 바라보던 여왕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무표정한 얼굴에서 언뜻 자신의 덧없는 생의 마지막을 보는 듯하다.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1823~1889)의 '사형수들에게 독약을 실험하는 클레오파트라' 속 여왕은 당시 지중해 주변국가 중 가장 부유한 여인이었다. 어떤 남성도 이 당당하고 매력 있는 동방의 여인 앞에선 무너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그려진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이다.

이집트에서 죽음은 산 자의 영혼이 육체를 벗고 떠나는 여행으로 인식됐다. 긴 여행에서 돌아온 영혼이 편안히 쉴 육체, 영혼의 안식처인 미라에 대한 관심은 종교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물며 여왕이자 파라오였던 클레오파트라는 두 말할 여지가 없다.

이 실험을 통해 여왕은 독약의 효과가 빠를수록 죽기 전 고통이 극심해 시체의 모습이 추하게 변형되고, 효과가 느릴수록 시체의 모습이 온전하다는 걸 알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실험은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에 극적이고 아름다운 전설을 만들어 주었다.

미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클레오파트라, 그녀의 조상은 대제국을 건설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휘하의 장군 프톨레마이오스 라지드. 대왕이 기원전 323년 사망하자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이 이집트의 통치권을 주장하며 프톨레마이오스 라지드 왕조가 생겨났다.

마케도니아의 후손으로 이집트인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클레오파트라는 부왕이 죽은 뒤 관례에 따라 혈통의 순수함을 위해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해 18살에 이집트 공동 통치자로 등극했다. 이는 이집트 신앙에서 오시리스와 이시스 신이 오누이이자 부부였던 것에서 기인했다. 그리고 그리스나 로마와 달리 여성 왕족의 통치를 인정하는 기반이었다.

클레오파트라는 250년이나 지속된 라지드 왕가에서 민중의 언어인 이집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유일한 파라오였다. 라지드 왕가 사람들은 마케도니아인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어를 일상에서 사용했다. 그리스 신을 섬기고, 그리스 풍의 옷을 입는 등 이집트 토착민들과는 이질적인 삶을 살았다.

그렇기에 백성을 대할 때 이시스 신의 모습으로 분하고 이집트어로 소통하는 여왕의 모습은 토착민의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외교적인 면에서도 권력의 집권과 유지에 대한 매커니즘을 일찌감치 깨달아 당시 로마의 최고 권력자를 조종하는 것이 자신을 비롯해 조국을 위한 길임을 알고 행동에 옮겼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던가. 로마에 의해 철저히 탐욕과 방탕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라는 로마의 두 영웅을 파멸의 길로 이끈 팜므파탈로 묘사됐다. 거대한 로마제국이 자신의 나라를 속국으로 삼기 위해 조여 오고 있을 때 약소국의 통치자로서의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멸망할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고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헌신적인 파라오가 그녀의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클레오파트라의 콧대가 한 치만 더 높았더라면 세계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란 말이 있다.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던 그녀에게 이집트의 운명이 걸린 악티움 해전의 패배는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이제 이집트는 완전히 로마의 속주로 전락해버릴 것이고, 사랑하는 남편 안토니우스의 시신이 채 식기도 전에 득의양양한 옥타비아누스의 개선행진에 끌려가서 죽느니만 못한 모욕을 당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하인이 복숭아 바구니에 담아온 뱀에게 손을 뻗는 여왕. 독이 온 몸에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심정이 어땠을까. 아마도 그녀의 마지막 소원은 자신의 시신이 흉하게 일그러지지 않고 여왕의 품위를 유지한 채 죽음을 맞기를 바랐으리라.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누구든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블랙리스트로 묶어 탄압했던 전직 대통령이 지금 감옥에 있다.

클레오파트라와 박 전 대통령 둘 다 여왕인 것은 같은데 다른 점은 무엇일까. 기원전에 살았던 여왕에게 조국을 위한 헌신과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모습이 있다면, 후자에게선 과연 그걸 찾아볼 수 있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 조경희 미술팀 전문위원 = 충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한 뒤 동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충북 단양군에서 첫 교편을 잡은 뒤 미술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충북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하며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서울 성수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 세이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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