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세상읽기] '행복한 관음증' 숨겨진 본능을 깨우다
[그림으로 세상읽기] '행복한 관음증' 숨겨진 본능을 깨우다
  • 조경희 미술팀 전문위원
  • 승인 2017.08.07 01: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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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목욕하는 여인〉
▲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목욕하는 여인〉. 캔버스에 유채, 146×97cm ,1808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여인은 지금 막 목욕을 마치고 나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짙고 두꺼운 커튼 너머로 숨어들어온 빛이 여인의 머리를 감싼 터번에 머물다 뒷목을 타고 미끄러지듯 하강하며 은은하게 번져나간다.

자연스럽게 구겨진 새하얀 침대보는 여인의 둔부를 부드럽게 받쳐주며 적당한 중력을 느끼게 한다. 겨우 속눈썹만 간신히 보일 정도의 옆얼굴 외에 밋밋한 뒷모습이 전부지만, 이 여인이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인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으리라.

여인이 누드로 등장하려면 비너스, 아테네 등 여신의 이름을 덧입지 않으면 불가능하던 당시 19세기 신고전주의 화풍에서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ㆍ1780~1867)가 그린 <목욕하는 여인> 속 주인공은 벗은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라는 듯 느긋해 보인다.

서둘러 옷을 입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그림의 원제는 <앉아 있는 여인>이었지만 발팽송이라는 사람이 소장하게 되면서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으로 불리고 있다.

나폴레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신고전주의의 대가 다비드의 제자였던 앵그르는 스승을 능가한다는 찬사를 받으며 1801년 파리 아카데미가 선정한 '로마상'을 수상한다. 장학생으로 로마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접하게 된 그는 라파엘로의 화풍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붓자국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조각 같이 매끈한 형태와 고상한 색채가 그의 화폭에서 완벽한 아카데미즘으로 구현됐다. 그의 붓끝을 통해 드러나는 여인의 우아한 자태는 정확한 데생력을 바탕으로 그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며 앵그르를 신고전주의 회화의 중심적 존재로 만든다.

스승인 다비드가 공적인 이상과 고대의 도덕적 가치에 무게를 둔 작품으로 신고전주의가 추구하는 이상적 형식미에 기여한 반면, 제자인 앵그르는 표현 형식은 고전주의를 따르면서도 사적인 취향이 드러나는 감성적인 여인의 초상과 누드를 그림으로써 내용 면에선 낭만주의와 타협했다고 볼 수 있다.

여인의 머리를 감싼 터번에 자꾸 눈이 간다. 예사롭지 않은 이 터번이 여인의 신분을 말해준다. 하렘의 여인이다. 각 정복지에서 끌려온 여러 이민족 여인들이 오로지 지배자 술탄을 위해 성노예로 살던 화려한 새장 속 여인인 것이다.

탐험의 시대 이후로 서양은 이슬람을 비롯한 동양권에 근거 없는 환상을 갖게 된다. 미개한 동양인들 스스로 문명화 된 서양인의 지배를 받고 싶어 한다는 착각 말이다. 여기에 에로틱한 감성이 더해지며 완성된 오리엔탈리즘은 당시 유럽 사회에 만연했다.

앵그르도 별 다른 비판 없이 이런 시류에 편승하며, 르네상스가 이뤄낸 이상주의적 고전미를 덧입히면서 자신만의 에로틱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오리엔탈리즘에 취한 백인 남성의 시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이 그림은 요즘의 페미니스트에게 성토의 대상이 되는 건 운명일 터. 그러나 왠지 이 여인은 감상자로 하여금 그런 저런 이슈와 철학을 잠시 내려놓고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게 만든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면 이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관음증이라 비판 받는 우리의 숨겨진 본능을 슬며시 깨우고 있지는 않는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 감상자도 이 그림 앞에선 같은 처지가 된다.

시각의 촉각화. 바라보기만 하는데도 그녀의 살결이 촉감으로 전해진다. 몰카를 들여다보는 현대의 관음증 환자의 모습이 혹시 자신에게 있나 싶어 화들짝 놀라기 직전까지는 더없이 행복한 일상의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앵그르가 28세 때 그린 이 뒷모습의 여인은 20년 후 48세에 그린 <소욕녀-하렘의 내부>에 이 모습 그대로 재등장하고, 다시 35년이 흘러 83세가 된 노화가의 그림 <터키탕>에 류트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해 세상 이목의 중심에 선다.

아마도 이 여인은 20대의 젊은이가 80대의 노인이 되도록,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변함없이 한 남자의 가슴속에 간직된 영원한 노스텔지어, 앵그르만의 여신상이 아닐까.

■ 조경희 미술팀 전문위원 = 충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한 뒤 동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충북 단양에서 첫 교편을 잡은 뒤 미술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충북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하며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 서울 성수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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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신 2017-08-08 08:32:53
머리에 두른 수건이 터번이고, 이 여인은 하렘의 여인인가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보게 됩니다.

저는 이 여인의 뒤태를 그린 선에서(몸의 윤곽선) ‘미의 변천’을 읽게 됩니다. 요즘은 저런 몸매를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 이상한 세대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저런 몸매가 아름다운 것이었으니, 미도 시대를 따라 변하는 것이 사실이겠지요.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것을 “미(美)”라고 할까요? 결국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저 같은 사람은, 앞으로 전개될 미의 세계가 어떤 것이 될지 은근히 기대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