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의 이슈분석 <15> 소방에 더 많은 어른이 필요한 이유

최근 개봉된 영화 ‘히말라야’는 산악인 엄홍길 대장의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다.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 내내 산 사나이들의 도전,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대장의 리더십과 대원들 간의 끈끈한 의리를 가슴으로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영화를 보다 보니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2011년 필자는 한 방송 프로그램의 인연으로 엄홍길 대장과 함께 2주간 스리랑카에 동행한 적이 있다. 스리랑카 오지마을의 한 초등학교를 보수공사 하는 프로젝트였는데, 2주간 머무르는 동안에도 그는 영화에서 보여준 것처럼 몸소 실천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줘 동행한 대원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

그는 2005년 에베레스트 등반 후 하산하다 목숨을 잃은 후배 산악인 박무택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직접 ‘휴먼원정대’를 이끌고 목숨을 건 도전을 감행하기도 했다.

이렇듯 그가 보여준 ‘실천의 리더십’은 아주 오랜 시간동안 다져온 경험과 노력, 그리고 다른 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소방대원들 역시 생사의 갈림길에 설 때가 많다. 그런 이유로 소방은 다른 어느 조직보다도 더 두터운 형제애를 자랑한다. 그래서 소방조직에도 실천하는 리더가 필요하다.

실천하는 리더는 본인 스스로 솔선수범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끓어오르는 열정과 의리를 지닌 소방대원들을 한데 잘 아우르면서 전진해 나갈 그런 혜안(慧眼)과 실천력을 가진 인물을 말한다.

물론 소방에도 존경받는 리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은 리더가 나와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소방조직의 위기는 단순히 예산이나 정책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진정으로 소방을 아끼고 소방의 발전을 위해 몸소 실천했어야 할 리더의 부재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이미 순직한 소방대원들, 그리고 현재 공상으로 고통 받고 있는 동료 소방대원들을 대하는 모습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해 개최된 ‘순직소방공무원 추모식’에는 우리가 소위 리더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또한 계속된 현장활동으로 백혈병이나 혈액암 등으로 투병하며 고통 받고 있는 동료 소방관들 옆에도 여전히 그들은 없었다.

히말라야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울에서 2시간 남짓 되는 거리의 국립대전현충원이 그렇게 먼 거리였는지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올해부터는 국민안전처를 비롯한 여러 단체와 기관들이 순직소방관과 현재 투병중인 소방관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고 하니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승진을 하면 자동으로 리더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이런 씁쓸한 깨달음은 그동안 권한만을 누리고,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는 절름발이 리더들을 무수히 목격한데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소방서장이 되기 위해서는 20년 이상의 현장경력과 전문성, 그리고 직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학력도 필요하다. 그래서 소방서장이란 자리는 맨 처음 소방대원이 된 이후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의 끝에 서 있는 영광의 자리인 것이다.

소방서장이 되면 보통 5개의 나팔(Bugle)이 교차된 계급장을 옷깃에 착용하는데, 나팔 5개의 무게는 5톤에 달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책임감은 막중하다.

진정한 리더는 계급장이 아닌 경험, 노력, 열정, 그리고 실천으로 말하는 법이다.

며칠 전 설 연휴기간 동안 현장에 배치돼 근무하는 소방대원들을 직접 찾아가 격려하며 커피를 선물했다는 한 소방서장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고마운 일이다.

소방에는 더 많은 어른이 필요하다. 같은 일을 하는 후배들의 고충을 알아주고 직접 찾아가 격려해 줄 수 있는 사람. 소방대원들과 시민의 안전을 위해 더 많이 고민하는 사람. 필요할 때 자신의 위치에서 주눅 들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어른 말이다.

그래서 소방이라는 나무가 보다 더 굳건히 이 사회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기꺼이 거름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큰 사람을 나는 너무도 만나보고 싶다.

이건 세이프타임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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