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팔순을 맞은 배우 이순재는 아서 밀러 원작의 연극 '시련'에 출연하기에 앞서 "말년에 내가 할 수 있는 큰 작품"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순재는 19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국립극단의 '시련' 기자간담회에서 "밀러가 매카시즘으로 곤욕을 치른 뒤 쓴 '시련'은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도 공감할 만한 상당히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서 실제로 벌어진 마녀사냥을 소재로 하는 이 작품은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과 개인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집단적 광기가 개인과 사회를 어떻게 파괴해나가는지를 생생히 묘사한 수작이다.

이순재는 이 작품에서 고위직 행정관이자 법률가로 자신의 권위를 지키고자 '마녀'로 고발된 이들에게 무자비하게 사형을 선고하는 댄포스 역을 맡았다.

관록의 배우이기는 하지만 고령의 나이에 상대역과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대사를 치고받는 이번 작품이 쉽지만은 않을 터.

이순재는 "쉴 새 없이 (상대역과) 붙고 격렬히 (연기)해야 하는 힘든 작품과 역할"이라면서도 "말년에 내가 할 수 있는 큰 작품이자 나한테 의미 있는 공연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이번에 참여하게 돼서 기쁘다"면서 "제대로 연습해서 제대로 된 공연을 하면 관객의 많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의지를 보였다.

'시련'은 300여 년 전의 사건을 배경으로 하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을 '악'으로 모는 세일럼 마을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박정희 연출가는 "우리는 모두 정치·사회·경제적 체제 안에 있으나 부속물은 아니다"라면서 "그 안에서 어떻게 욕망하고 저항하는지, 개인이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찾고자 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김윤철 예술감독은 "'시련'은 올해 국립극단이 표방하는 주제인 '해방과 구속'에 본질적으로 다가가는 작품"이라며 "연극적으로 강력한 작품이자 오늘날 우리 사회와도 밀접하게 관련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공연의 가장 색다른 점 중 하나는 무대 뒤편에 36석의 관객석이 따로 마련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원형 공연'인 셈이다.

박 연출가는 "관객과 관객이 대치되는 것"이라며 "관객이 연극을 감상하고 동화되는 게 아니라 직접 체험하게끔 하도록 무대 디자이너와 상의해 무대를 연출했다"고 밝혔다.

이순재와 함께 댄포스 역에 더블 캐스팅된 이호성은 "뒤에 있는 관객에게도 연기를 보여줘야 해 상당히 고난도 연기를 펼쳐야 하는 무대"라고 말했다.

공연은 오는 12월 2일부터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이어진다. 관람료는 2만~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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