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의 이슈분석 <12> 출동시간 · 이송건수 측정도 소방관 압박

작은 구급차 안에서 구급대원과 환자의 물리적 거리는 거의 맞닿아있다. 그래서 환자로부터 한 번이라도 폭언이나 폭행을 당해 본 경험이 있는 구급대원이라면 이송하던 환자가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얼마 전에는 한 구급대원이 술에 취한 사람을 이송하던 중 폭행을 당해 전치 2주의 뇌진탕 진단을 받은 어처구니없는 사건도 발생했다. 그래서 구급대원들에게는 언제 어디서 무엇이 자신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항시 존재한다.

구급차는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작은 병원’이다. 고도로 훈련받은 구급대원은 자신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쏟아 부어 환자의 안전과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근무여건을 들여다보면 대단히 위험하고 열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급이라는 시각을 다투는 업무 특성상 빠른 출동과 신속한 환자이송을 위해서 그들은 수시로 교통사고의 위험에 노출된다. 또한 처참한 사고현장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는 일은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대단히 벅찬 일이다. 환자의 피가 옷에 묻는 경우도 수시로 있으며, 환자의 몸에서 나는 그리 유쾌하지 못한 냄새도 참아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구급대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환자로부터의 폭언과 폭행이다.

국민안전처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술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악마로부터 구급대원이 폭행을 당한 사고가 자그마치 591건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구급대원들은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등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심한 경우에는 소방공무원을 사직하기도 한다.

이웃나라 미국에서도 구급대원에 대한 폭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의 한 통계자료를 보면 구급대원들이 근무 중 폭행을 당하는 경우는 미국 평균수치의 무려 30배에 달하며, 구급대원 5명중 4명이 직무와 관련해서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심지어는 구급대원들이 인질로 잡히거나, 환자가 쏜 총에 맞아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총기가 보편적으로 보급되어 있는 미국에서 구급대원이 방탄조끼와 헬멧을 착용하고 출동하는 모습이 더 이상 놀라운 광경도 아닌 것이다.

소방서 업무 중에서 가장 분주한 사람들이 바로 구급대원들이다. 구급대원들은 최일선에서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수고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안전은 위협받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갈등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폭력 상황에서 효과적이고 적절한 구급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대단히 복잡한 사안이며, 그런 폭력에 구급대원들이 적절하게 준비된다는 것 또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폭력과 관련해서 몇 가지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만약, 이송하던 환자가 구급대원에게 칼을 들이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사회에 불만을 품은 한 사람이 불법으로 구입한 염산을 출동한 구급대원에게 뿌리려고 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폭력사건이 진행 중인 곳에서 구급활동은 언제 어떻게 시작해야 옳은가.

과연 이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구급대원들을 위한 안전매뉴얼이 존재하는지도 궁금하다.

앞에서 말한 시나리오 이외에도 어쩌면 구급대원들은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의 일들을 이미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굳이 누가 물어보지 않으면 어지간한 일들은 구급대원 스스로 가슴속에 묻고 가는 상황이 일반화 되어있어 그들이 얼마나 어떻게 고통 받고 있는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대한민국 소방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구급대원들은 안전과 보건이 확보된 상황에서 근무할 권리가 있다. 물론 극도로 긴장하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 구급대원을 위한 모든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거라고 기대하기 힘든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구급대원의 안전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빠른 출동만을 강조하는 현 상황에서 구급대원들은 자신의 안전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무방비 상태에 노출되어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지방의 경우에는 출동인원이 부족해서 고작 1명 내지 2명의 구급대원만 출동하는 관계로 그들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현장이 구급대원의 신변을 충분히 위협할 만한 상황이라고 판단되거나, 현재 폭행사건이 진행 중인 상황이라면 경찰관이 도착해서 현장을 정리할 때까지 구급대원이 기다려야 하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주취자의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 경찰관의 협조를 받아 환자를 이송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하다.

결국 요점은 현장에서 119 구급대원들의 안전 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런 상황 속에서 구급대원들의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디 국민안전처와 각 소방본부는 구급대원들의 안전이 더 이상 위협받지 않도록 보다 다각적인 측면에서 안전장치를 마련해 주길 바란다.

아울러 응급구조학과 학생들과 구급대원 신임교육에서도 현장안전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서 구급대원으로써의 경력을 시작하기 전부터 안전마인드를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면 좋겠다.

골든타임 제도로 인한 출동시간 측정이나, 구급이송건수 등과 같은 통계만을 위한 정책이 정작 우리의 소방관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다시 한 번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이건 세이프타임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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