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세상읽기] 나귀에서 떨어지면서도 웃은 사연
[그림으로 세상읽기] 나귀에서 떨어지면서도 웃은 사연
  • 조경희 미술팀 전문위원
  • 승인 2017.05.0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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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진단타려도>
<진단타려도>, 윤두서(尹斗緖), 1715(숙종41), 비단에 채색, 110.9x69.1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한 사내가 나귀에서 떨어지고 있다. 얼마나 놀랐을까. 그런데 사내의 표정이 상황과 맞지 않는다. 웃고 있다. 다시 봐도 마찬가지. 슬랩스틱 코메디언도 아니건만 중심을 잃은 채 땅으로 처박히는 와중에도 털북숭이 사내의 표정은 헤벌쭉하다.

이 그림의 제목은 진단타려도(陳摶墮驢圖). 진단(陳摶)은 '진단 선생'을, 타려(墮驢)는 '나귀에서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쟁이 한창이던 당시, 나귀에서 떨어지는 진단 선생의 일화를 그림으로 그려서 윤두서가 숙종에게 올린 어람용 그림이다. 그가 굳이 이 그림을 그린 속내는 뭘까.

진단은 10세기 당나라 멸망 후 지방 절도사들이 정권을 잡고 횡포를 부려 전란과 민란 봉기가 끊이지 않던 5대 10국 시대의 역학자(易學者)이자 도사(道士). 도술에 능통하고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 여러 황제가 그를 기용하려 했지만 모두 거절하고 은거하던 인물이다.

왕조가 바뀌고 새 황제가 등극할 때마다 참된 군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항상 얼굴을 찌푸렸던 그가 지금 웃고 있다. 선생이 흰 나귀를 타고 하남성으로 가던 길에 방금 행인으로부터 '낙양의 협마영 출신 조광윤(趙匡胤)이라는 사람이 송나라를 세우고 왕이 됐다'는 말을 들은 직후다. 선생은 평소에 조광윤을 뛰어난 인재로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 말을 듣고 기쁜 나머지 박장대소 하다가 그만 안장에서 떨어진 것이다.

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가 외친 말이 있단다. "이제 천하가 안정되리라."

<진단타려도> 부분

송나라 태조 조광윤은 가난한 군인 출신. 후주(後周)의 절도사가 된 후 거란의 침공에 맞서 출정에 나섰다가 진교역에서 회군하여 황제가 됐다. 5대 10국 최후의 왕조였던 후주의 명군인 세종이 병사하고 7세의 어린 황제가 즉위하는 '행운'을 맞이한 그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자고일어나 보니 황제가 돼 있었다는 것.

진교역 병영막사에서 술에 취해 잠든 그에게 부하 장수들이 황포를 입히고 황제로 옹립한 것이다. 역사의 물결은 이렇게 민의에 따라 분열을 넘어 통일의 주기를 맞이하게 됐다.

송 태조 조광윤은 자신을 황제로 이끌어 준 공신들을 잊지 않았으나, 진교역에서 자신을 황제로 받든 5대 공신을 불러 술 한 잔 하면서, 그들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지방으로 향하도록 했다. 또한 인재 등용에 차별을 두지 않았고, 정적을 숙청하기보다 포용하고, 언로를 열어 황제에게 간언하는 사대부의 말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죽이는 일은 없도록 했다. 이러한 그의 유훈은 후대의 황제들에게 '태조의 원칙'으로 지켜져 송대에는 감옥에 가거나 유배를 갈지언정 목숨을 잃는 사대부는 없었다고 한다.

결국 이 그림은 임금이 중국 '진단의 고사'를 상기하면서 어질고 현명한 성군(聖君)이 되어 나라를 태평성대로 이끌어 달라는 윤두서의 충심어린 간언인 것이다. 윤두서에게서 이 그림을 받아 든 숙종, 장희빈과 인현왕후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던 그는 이 그림을 보자마자 무슨 결심을 했을까. 아마도 자신의 치세가 백성에게 나귀에서 떨어질 만큼 기쁜 일이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호는 공재(恭齋). 조선 후기의 문인 화가. 고산 윤선도의 증손이자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이다. 겸재 정선, 헌재 심사정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삼재(三齋)로 불린다. 윤두서는 그 유명한 자화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세태를 읽는 매서운 눈, 후덕한 얼굴에 털북숭이 수염을 가졌다. 나귀에서 떨어지고 있는 선비의 모습과 영락없이 닮았다. 진단 선생과 본인을 동일시 한 것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당시 남인에게 불리한 붕당정치의 세태 속에서 당쟁에 휘말려 형들과 벗들이 죽거나 모함당하는 것을 지켜봐왔던 그는 이 그림을 통해 숙종이 성군의 도를 잊지 않도록 간언을 한 것이다. 신하의 간언에 기꺼이 그림 상단의 제시문으로 답한 임금. 충신과 성군의 도가 그림을 타고 흐른다.

대선이 다가왔다. 당선소식을 들은 국민이 박장대소 하다가 중심을 잃고 자빠질 정도로 훌륭한 지도자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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