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데 뭔가 뻥 뚫려서 글이 훤하게 보이는 상태를 저는 옛 사람들의 표현을 빌려 '문리(文理)가 트였다'고 합니다. 문리가 트여야 공부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어 집니다. 학생이 비로소 성적이 오르는 재미를 느끼고 공부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이 자신들의 몸에 얽힌 문리를 풀어내기 위해 얼마나 책을 읽어야 할까요. 

300~500권의 책을 읽어야 문리가 풀어지기 시작합니다. 문리가 트이는 책의 숫자가 어디서 왔는지, 그 숫자가 나온 구체적인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대충 이 정도의 책을 읽어야 비로소 문리가 트입니다.

이 책의 분량을 시간으로 환산해 보겠습니다. 1년이 52주 정도 되기에 1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해도 300권은 6년, 500권은 10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럼 우리 아이들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해야 하는 시기가 대충 언제쯤부터여야 하는지 계산이 나옵니다.

그런데 현재 상황에서는 대학을 들어가는 시간과 책을 읽는 시간이 충돌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지독(遲讀)입니다. 지독은 책을 요약해 쓰면서 읽는 방식입니다. 많은 책을 보려고 하지 말고 좋은 책을 골라 한 문단 혹은 책 한 쪽을, 한 문장 혹은 두세 문장 정도로 요약해서 독서 노트에 기록하면서 읽는 방식이 지독입니다. 이렇게 하면 문리가 빨리 트입니다.

學而不思則罔(학이불사즉망) 思而不學則殆(사이불학즉태). 공자는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지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고 했습니다.

정이신 논설위원ㆍ목사

책을 읽으면서 책에 관한 글을 같이 써야 합니다. 책의 내용을 제대로 요약할 줄 모르는데 실력이 오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책을 읽고 아무 내용이나 써도 되지만, 차츰 책의 핵심 내용과 지은이의 주장을 찾아 요약하는 훈련을 병행하며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을 읽고, 보고들은 만큼 자기의 글을 써야 책과 지은이와의 대화가 가능합니다. 내 감각으로 보고 들은 것들의 이면에서 나오는 '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런 책 읽기를 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책이나 지은이만의 소리를 듣게 되고, 드러난 내 감각으로만 사물을 파악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글쓰기만큼 좋은 개운법(開運法ㆍ운명을 꽃피우는 법ㆍ운명을 바꾸는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공부는 뇌(腦)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하는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공부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닙니다. 현대의 부모들은 머리로만 공부를 시키려 합니다.

이것은 절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초등학교ㆍ중학교 때 공부 잘했던 아이가 고등학교 때 망치는 것을 너무도 많이 봤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는 학생들이 머리로만 공부를 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책을 읽을 때, 혹은 공부를 할 때는 눈으로만 익히지 말고 직접 쓰며 연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책만 읽고, 듣고 보기만 하고 스스로 써보지 않으면 음식을 먹기만 하고 배설하지 않는 것과 비슷해집니다.

배설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은 음식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건강하지 않은 학생이 됩니다. 공부는 학생이 건강하기 위해서, 건강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고, 최종적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강 건너 남쪽에서 과외강사를 하면서 착각에 빠져 있는 학생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학원 강사가 잘 가르치는 것이지 자신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닌데, 학원 강사가 잘 가르치는 것과 자신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을 착각해서 서로를 바꾸어 생각하는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과외강사나 학원 강사들을 품평(品評)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가진 실력은 엉망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과외강사나 학원 강사가 아무리 잘 가르쳐도 그것은 강사의 실력이지 자신의 것이 아닌데 그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착각하고 강사를 품평만하고 있으니 실력이 제대로 오를 리 없었습니다.

‘시습(時習ㆍ때로 익히는 것)은 관성의 법칙에 지배를 받습니다. 관성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잠재의식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나쁜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관성을 깨고 반복하는 시습이 필요합니다.

시습은 내가 몸으로 행하면서 익혀야 합니다. 문리가 트일 때까지 시습을 계속 반복해야 합니다. 시습의 관점으로 보면 단순하지만 지속적인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좋은 책을 반복해서 되새김하는 것, 정독(精讀)과 지독(遲讀)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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