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실력(實力)과 암기력(暗記力)이 같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둘은 엄격하게 다릅니다. 암기력은 뇌에 있는 해마(hippocampusㆍ海馬)에서 주로 관장하고, 실력은 좌ㆍ우뇌가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 관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학과목의 실력은 무엇으로 결정될까요. 초등학교와 같은 학업 초기에는 당연히 암기력이 우세합니다.

그러나 공부를 1~2년 이상 지속하면 단순 암기력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이때부터는 좌ㆍ우뇌를 번갈아 쓰는 종합판단능력이 뒷받침이 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부에 재미가 없어지고 암기력의 한계로 인해 차츰 학업에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종합판단능력은 '문해력'이라 불리는 '문장해독능력' 혹은 '텍스트분석능력'을 통해 배양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당시에는 초등학교라 하지 않고 국민학교라고 했습니다). 국어 시간에 처음 배운 글이 "철수야, 안녕. 영희야, 놀자. 선생님, 안녕하세요"였습니다.

정이신 논설위원ㆍ목사

국민학교를 다닐 때 지역에 따라 편차가 조금 있었겠지만, 제 고향에서는 학교 내에서 여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같이 노는 것을 금기시했습니다. 학교에서 누가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니었지만, 남자 아이들 내에서는 이것이 불문율로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학교나 동네에서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고, 이는 때로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국어 교과서에는 저렇게 번듯하게 수록돼 있었습니다. '대체 누가 여자 아이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어 국어 시간에 우리는 이 글을 처음으로 읽고 배우면서 많이 웃었습니다.

이제 이 예문의 행간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첫째, 위의 예문은 철수와 영희가 학교에서 같은 반 아이들이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경우 저렇게 남녀 간에 인사를 하지 않았기에 이 둘은 분명히 학교에서 같은 반 학생들이었습니다.

둘째, 선생님의 경우 철수와 영희의 담임선생님일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에 학교에는 여러 선생님이 계셨지만, 담임선생님이 아닐 경우 저렇게 인사말까지 하며 인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담임선생님 다음으로 얼굴을 가장 많이 대하는 교장 선생님이나 옆 반 선생님을 만나도 그냥 고개만 숙였지 인사말을 덧붙이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합니다. 철수와 영희는 같은 반 아이들일 것이고, 둘이 인사를 한 선생님은 둘의 담임선생님일 것입니다.

셋째, 둘 혹은 셋은 지금 학교에서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학교가 아닌 곳에서 저런 식으로 인사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어 교과서에는 어느 곳에도 이들의 관계가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문화적 환경을 고려해서 위의 예문을 분석해 보면 이러한 추론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문해력의 기초인데, 문해력은 모든 학과목의 실력을 향상 시키는 토대가 됩니다.

문해력은 국어나 글 읽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수학이든 영어든 기본적으로 문해력이 없으면 암기력으로만 공부를 하게 되고, 인간의 암기력은 한계가 있기에 어느 과목이든지 실력이 일정 수준 이상 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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