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의 이슈분석 <11> 1등급 소방서를 향한 미국의 도전

미국 보스턴주 하버드대학교내에 위치한 캠브리지 소방서, 뉴욕주 시러큐스 소방서,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소방서의 공통점은 모두 미국보험사무소(Insurance Service Office, ISO)가 최고 등급으로 평가한 1등급 소방서란 점이다.

ISO는 미국 전역에 걸쳐 각 지역별로 소방서, 관내 소화시설, 화재예방 프로그램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안전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안전등급은 최고 등급인 1등급에서부터 가장 낮은 등급인 10급으로 나누어지며, 이 등급은 각 보험회사의 지역 화재보험료 산출에 반영된다.

1등급이라는 의미는 해당 소방서를 포함한 지역사회가 화재예방 및 진압에 관해서 대단히 우수하게 준비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10등급은 해당 지역이 ISO가 정한 최소 안전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부여된다.

조금 더 깊이 그들의 평가항목을 들여다보면, ISO는 소방서의 위치, 긴급통신시스템 유무, 소화전의 위치와 수압, 그리고 소방검사, 화재예방 교육 및 화재조사 프로그램 등 지역사회 위험요인 감소정책 등을 꼼꼼하게 따져본다.

특히 지역사회 안전의 중심이 되는 소방서를 평가하는 그들의 잣대는 대단히 까다롭다. 우선 법에 근거한 정식 소방서가 설치되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한 후, 관할구역의 규모, 소방대원의 숫자 및 자격현황, 소방장비, 훈련 프로그램, 상황실 비치 등 소방서가 보유한 모든 인적. 물적 자원에 대해 면밀하게 평가한다.

이중에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부분이 하나라도 누락이 되었다면 여지없이 10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ISO의 최근 통계를 보면, ISO 등급에 참여한 4만8754개소 중에서 1등급으로 인정을 받은 소방서는 고작 132개뿐이다. 9등급과 10등급을 받은 소방서는 1만2780개소나 된다.

일단 1등급 소방서로 선정되면 이는 해당 소방서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로써도 대단히 영광스러운 업적으로 간주되며, 소방차에는 1등급(Class 1)이라는 멋진 글자도 새겨진다.

혹자에게는 소방서가 외부기관인 ISO로부터 검증을 받고 등급을 부여받는 과정이 그리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소방서 입장에서 본다면 대단히 훌륭하게 객관적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높은 등급을 받은 소방서는 지역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시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관내에 훌륭한 소방서를 보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각종 재난대응과 화재예방과 관련해서 미 연방정부에 재정지원을 신청할 때에도 그 효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재정이 열악해 ISO로부터 낮은 등급을 부여받은 소방서들은 ISO의 자료를 시의 예산담당 부서에 대한 압박용 카드로 사용하기도 한다. ISO에서 부여한 낮은 등급은 미국사회에서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해 그만큼 지역주민들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측면을 부각시키면서 소방 인력과 장비의 충원을 요구하는 논리에 어느 정도 힘을 실어준다.

한편, 지역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1등급 소방서가 위치한 지역의 주민들은 신규로 화재보험을 가입하거나 갱신할 때 보험료를 인하 받는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낮은 등급을 받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센티브는 곧 신규기업 및 인구의 유입을 창출해 내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소방서장은 자신의 취임사에서 재임기간 동안 보다 높은 ISO 등급을 받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결심을 밝히기도 한다.

아직도 일부 보험회사나 소방서장들은 ISO에서 부여한 등급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 모든 소방서가 ISO 등급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안전등급을 부여하고 보험료 산출에 반영하는 ISO의 역할은 분명 효과가 있어 보인다. 우선 ISO 등급은 미국 전역에서 소방서, 소방장비, 소화시설, 그리고 소방대원을 위한 훈련 등 표준화된 기준을 제시하는 효과가 있다.

아울러 안전등급이 높은 지역에 제공되는 금전적 혜택은 곧바로 해당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향상시키고 높은 수준의 화재예방 노력을 유지하기 위한 긍정적 투자를 창출해 내는 효과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화재안전 우수건물’제도나 ‘공간안전 인증’제도 등 일부 안전등급 제도가 존재하지만,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보험회사와 지역사회, 그리고 소방서의 안전 1등급을 향한 미국의 협업과 도전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건 세이프타임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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