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시간적 의미를 헤아릴 줄 아십니까. 시간적 의미가 담기지 않은 눈물은 화학식으로 보면 주성분이 소금(NaCl)과 물(2H2O), 그리고 인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화합물일 뿐이지만, 시간의 의미가 담긴 눈물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도 응답이 역사를 통해 내려오는 통로가 됩니다.  

시간은 인간 주변에 널려있지만, 인간은 이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다만 이야기 형태로만 시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이야기라는 옷'을 걸치지 않으면 인간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어제와 오늘은 다른 이야기라는 옷을 입고 있기에 서로 다른 시간이 됩니다. 만약 어제와 오늘이 서로 다른 이야기라는 옷을 입고 있지 않으면 반복되는 같은 시간일 뿐 그것의 경계를 구분하기 힘듭니다.

눈물에도 이야기가 들어 있는 시간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시간이 들어가 있지 않은 눈물은 그저 악어의 눈물처럼 본능으로 흘리는 눈물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시간이 담긴 눈물은 어떤 이가 포기하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온 삶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인내의 사연이 됩니다.

'호곡장론(好哭場論)'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통곡할 만한 자리'라는 뜻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쓴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실린, 그가 중국(中國)의 요동(遼東)을 여행할 때 요동의 백탑과 광활한 벌판을 보고 그 감회를 적은 글입니다. 이 글에서 그는 끝없이 펼쳐진 만주 벌판을 보고 '한바탕 울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울음은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기쁨이 극에 달해 북받쳐 나오는 것으로, 갓난아이가 어둡고 비좁은 태속에서 넓은 세상으로 나와서 터트리는 울음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울음이라는 말을 통해 그가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자신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역설입니다. 조선시대에 중국 요동까지 여행을 갈 수 있었던 사람이 몇이나 되었겠습니까? 연암은 그런 기쁨을 누렸고, 그가 좁게 생각하던 조선을 벗어나 광활한 중국대륙을 보게 되었던 감회를 이렇게 썼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 공동체 목사

연암의 말처럼 우리도 한바탕 잘 울 수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울지 못하는 것이 자랑이 아닙니다. 울음을 참는 것이 좋은 것도 아니고, 용감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울 때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인간 앞에서 울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불쌍하지만 죄인일 수밖에 없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하려는 속성을 지닌, 연약해서 자꾸 넘어지고 쓰러지는 내 자신을 껴안고 우십시오. 나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부둥켜안고 통곡하십시오.

인간은 슬플 때 가장 많이 내려놓게 되고, 나아가 절실한 본질을 탐색하는 존재이기에 사람에게 이런 눈물이 없으면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이런 눈물은 이야기가 담긴 시간이 그 안에 녹아 있기에 연암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자신을 태속에서 새롭게 탄생시키는 기회가 됩니다. 저도 이제 하나님 앞에서 한바탕 크게 울기 위해 산으로 기도 여행을 떠나보려 합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ㆍ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 연합회 목사 안수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 공동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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