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외면 '무지' 속에 만들어 시행 앞 둔 '소방감리 처벌강화 법안'

법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하고 또 반드시 지켜야 할 사회적 약속이다. 그래서 우리는 법을 지키려 노력하고,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처벌을 내린다. 그 처벌 또한 사회적 약속으로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는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사회구성원들이 그 법을 성실히 따르려 노력을 한다.

잘못의 수위가 다른데도 처벌 규정이 같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경미(정지선 위반 등)한 교통법규와 중대한(음주운전의한 사망)사고가 같은 처벌 받는다면 또 벽에 낙서한 사람이 테러범과 처벌 같다면 어느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독재국가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울 법한 일이지만 우리 소방엔지니어들에겐 오는 20일 경부터 일어날 일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된 소방감리 처벌 강화 법안은 2014년 11월 서울 마포구의 한 국회의원이 발의했다. 지난해 3월 발표가 있었고 이달 시행을 앞두고 있다. 수많은 공무원과 소방 관계자들을 만나 부당함을 호소해보지만 법 시행 이전에 바꾸자는 것도 힘들뿐더러, 그런 처벌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대한민국 건축물의 화재안전 책임을 소방엔지니어들에게만 물을 수 있을까. 이 의문을 주제로 의정부 화재사고를 들여다 보자. 화재가 확산되고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진 발단은 건축관련 규제의 완화부터라고 정의해도 무방할 듯하다.

건축물 간 짧은 간격은 인접 건축물로 불이 번지는 원인이 됐다. 외장재를 규제하지 못한 것은 상층으로의 확대를 초래했고, 주차장 비율을 완화해 이면도로로 나온 차들은 소방차의 현장 진입을 지연시켰다. 피난계단 내 마감재를 불연ㆍ준불연재료로 규정하지 못했던 것은 건축 관계 부처의 무지함에서 비롯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현장에서 방화구획과 대피공간, 피난공간, 내화구조 등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소방엔지니어의 공이 크다. 이들을 화재안전의 독립군이라 칭하고 싶다. 지금 소방엔지니어, 화재안전의 독립군들은 일제강점기 보다 더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들에게 상장을 주지는 못할 망정 처벌을 강화하겠다니 밤잠을 못 이룰 만큼 참담한 심정이다.

물론 잘못에 처벌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소방엔지니어 중에도 몰라서, 혹은 알면서도 고의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법이 필요하고 처벌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처벌은 어디까지나 잘못에 비례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래야만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처벌을 받는 사람도 그에 수긍할 수 있다.

경중이 다른 잘못에 일괄적인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것은 지극히 행정 편의주의적인 발상이자 극도로 폭압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소방엔지니어에게 지키라고 강조하는 ‘국가 화재안전기준’의 일부만 떼어 보더라도 이를 100% 지키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소방엔지니어 뿐 아니라 국민안전처 소속 소방공무원들의 말이기도 하다. 지키지 못할 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우리 잠재적 범죄자들은 수십 만명에 이른다.

요즘 소방엔지니어 모임에 가면 성토의 목소리가 높다. 현장을 모르는 공무원에 대한 불만부터, 법안을 발의한 의원에 정책 공청회를 요구하자는 의견, 단체행동이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소방엔지니어로서 우리나라 건축물 화재안전에 대해 누구보다 걱정하고 또 대안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는 다른 모든 소방엔지니어들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관계부처와 국회의원들도 귀와 눈을 열어 우리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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