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호국성지' 전쟁기념관을 다녀와서
원단(元旦) 이면 으레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원양조업자, 환경미화원, 해외파견 근로자, 국군장병 등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최일선 현장에서 고생한다고 느껴지는 직업군이다.
새해 첫날 국군의 심장부인 용산의 호국단지내 전쟁기념관을 방문했다.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3만5000평 부지에 1994년 6월 개관한 용산전쟁기념관은 전쟁이슈에 약한 외국인들이 찾는 곳 1위다. 3년 연속 방문객 200만명을 돌파했다.
용산은 한이 많은 곳이다. 풍수체계로 보면 붙어있다시피 가까운 남산 줄기가 아니다. 서대문 쪽 인왕산과 무악산(안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남쪽의 약현고개와 만리현을 지나서 한강변에 도달한다. ‘계수즉지(界水卽止 · 지기가 솟구쳐 달리다가도 물을 만나면 그쳐서 응결해 유용한 혈을 맺음) 해 머리를 든 용과 같은 모형을 갖추니 용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경의선 철도부설을 위해 마포쪽 새창고개를 15m 깊이로 깍아내 '용의 허리가 잘렸다'는 풍수이론은 행정계통도 거론하고 있다. 삼국시대엔 한강유역 확보를 위해 300여년간 삼국쟁투의 처절한 전투장으로 3명의 왕이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을 확보한 또 다른 3명의 왕은 지역패권을 구가했다. 임오군란 때는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다. 러 · 일전쟁에서 이긴 일본군도 용산역에 주둔하며 기마부대를 두었다. 그 이후엔 미군이 주둔했고 지금은 국군의 심장부가 됐다. 전쟁기념관이 포근히 자리잡아 충의의 혈이 맺힌 장소가 됐다.
삼각지역에서 하차해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를 보고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다. 맞은편 국방부와 전쟁기념관 정문에서부터 많은 인파를 만났다. 전쟁기념관은 호국안보의 공동체의식을 높이는 곳으로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 싸운 기록과 유물 · 자료가 전시돼 있어 전쟁의 교훈과 호국 상무정신을 배우는 산교육장이다. 선열과 전쟁 영웅들의 호국 위훈을 추모 · 계승하는 성지다.
시설은 호국추모 · 전쟁역사 · 6.25전쟁 · 해외파병 · 국군발전 · 기증실 등 7개의 실내 전시실과 어린이박물관, 옥외 대형장비 전시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정문에서부터 수십m의 거대한 청동검의 위용이 우리 군사의 기백을 잘 보여준다. 야외에는 육 · 해 · 공군 대형무기 전시장이 있다.
초대형 폭격기, 탱크, 야포 미사일 등이 잘 전시돼 있었고 실물같은 연평해전 참수리호의 탄흔 앞에선 말을 잃었다. 분노에 목이 메여 숙연한 마음으로 나라 위해 성스럽게 산화한 용사들에게 한없는 경의를 표했다. 회랑을 꽉 메운 수많은 전사자 명비(銘碑)들 앞에서 묵념으로 추념했다. 필자는 언젠가 '생전에 이 땅이 전화(戰禍)를 입는다면 반드시 참전해 이 명비 옆에 이름을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동행한 처에겐 미안한 일이다.
6.25 때 적군으로부터 노획한 러 · 중 · 북한의 무기와 김일성 승용차, 이승만 대통령 승용차, 각종 병장기 및 부품, 무기체계 모형도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명계를 상징하는 충혼당의 어둠속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하고 선열들의 혼령이 평한하심을 기원했다. 이 나라를 잘 지키고, 가꾸어서 후손에게 고이 물려주겠다고.
특이한 것은 입구에 지하시설로 축조된 국민안전처 ‘비상대비체험관’. 일반 안전체험관이 아닌 국가 비상시 국민안전을 지키는 체험관으로서 특화돼 있었다. 비상시 대피소 찾아보기와 화학공격 등의 비상시에 대한 교육과 체험시설이 잘 꾸며져 있었다. 비상시 국민행동요령을 터득하는 데 좋은 연습장이다.
국민안전처가 짧은 기간에 안전문화 확산과 국민계도 · 홍보사업에 성과가 있었음을 다소나마 확인할 수가 있었다. 신뢰감을 가질 수 있었던 기회가 되기도 했으니 만큼, 안전분야 각종 종사자, 감시단원, 관찰위원, 안전모니터 회원, 안전문화협의 회원, 안전문화실천시민연대, 안전거버넌스, 군인, 학생, 시민들의 많은 견학이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