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냐, 정치교체냐"

정치권이 조기 대선 준비 체제로 접어든 상황에서 '정치교체'와 '정권교체'가 초반 대선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조짐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귀국과 동시에 '정치 교체'를 화두로 꺼내들면서 '정권 교체'를 줄기차게 외쳐온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정면으로 겨냥했기 때문이다.

이는 오랫동안 양강 구도를 형성해온 두 주자가 반 전 총장의 귀국과 동시에 시작부터 대선 프레임 대결을 예고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재인-반기문 (CG)

정권교체는 문 전 대표가 주창해온 대표적인 대선 프레임이다.

그는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반 전 총장이 민주당과 손잡고 정치를 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현 정권의 연장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새누리당 또는 제 3지대와 손잡고 정치를 한다면 박근혜 정권의 연장"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8일에는 "반 전 총장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정권교체는 아니지 않으냐. 국민이 원하는 건 정권교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 전 대표가 정권교체를 역설하는 것은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대선 승리를 위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포석이라는 게 정치분석가들의 시각이다.

또 반 전 총장을 중심으로 한 '제3 지대론'이 탄력을 받아 정계개편이 급물살을 탈 수 있는 만큼 원심력을 최소화하려는 의지로도 읽힌다.

한 마디로 유권자들을 향해 '반기문 당선=박근혜 정부의 연장'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정권교체를 키워드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한-중 한류콘텐츠 산업 현장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반면 반 전 총장은 한국 사회가 총체적 난관에 부닥친 것은 비단 현 정권과 여당의 잘못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 정쟁을 통해 이익을 보려 한 야권에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정치교체'라는 용어를 꺼내 들었다.

정권교체가 아니라 여야 공동이 책임져야 할 정치의 실패를 정상화하는 것이 해법이라는 인식인 셈이다. 이는 또 '개헌파'를 끌어안으려는 시도로도 해석됐다.

실제로 그는 귀국 기자회견에서 "정권을 누가 잡느냐, 그것이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반문한 뒤 "정쟁으로 나라와 사회가 더 분열되는 것은 민족적 재앙", "남을 헐뜯어 권력을 쟁취하겠다는 권력의지는 없다"며 기성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또 국민 대통합을 내세워 패권과 기득권이 더는 안된다고 지적한 것 역시 정치권의 '친문(친문재인) 패권주의' 비판론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환영식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반 전 총장의 회견이 향후 대선 정국에서 여야를 넘나드는 광범위한 연대ㆍ연합과 제3 지대를 염두에 두고 정교하게 계산된 발언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의 패권 청산론은 친문 패권주의를 비판한 국민의당, 친박(친박근혜) 패권주의에 반발해 분당한 바른정당과의 연대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민주당 내 비문(비문재인) 진영의 대표인사인 김종인 전 대표가 친문 진영을 기득권·패권세력으로 규정하며 제3지대를 '비패권지대'라고 언급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는 분석이다.

'정치교체'가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대표가 자주 사용해온 용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안 전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반 전 총장이 정치교체라는 용어를 썼다는 질문에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다. 이게 나라냐부터 해서 정치권은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곳이구나 매 순간 느낀다"고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문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인사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반 전 총장이야말로 기득권 구조에서 가장 누려온 분 아닌가"라며 "가장 오랫동안 구정치를 누린 분이 정치교체를 이야기할 건 아닌 것 같다"고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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