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과꽃 피면 보고 싶은 얼굴들' 김하리 시인

사과꽃 피면 보고 싶은 얼굴들

경북 영주의 작은 마을 풍기읍. 풍기초등학교에 교대를 갓 졸업한 ‘조두희’라는 남자 선생님이 부임했다. 실제로도 키가 큰 편이지만, 당시 11살 소녀의 눈에 들어온 선생님은 미루나무처럼 커 보였다.

그 뿐인가. 부임한 선생님의 말씨부터 달랐다. <사과꽃 피면 보고 싶은 얼굴들>의 작가 김하리 시인(59 · 본명 김군자)은 "선생님께서 사용하는 말이 우리 동네 사람들이 사용하는 그것과 같은 줄 알았는데 곱상한 억양을 구사한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26일 시인 김하리씨와의 인터뷰는 시집 제목처럼 은사에 대한 회고로 시작됐다.

그는 "조두희 선생님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은 '멋지다'는 표현보다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교대를 졸업한 뒤 군복무를 마친 젊은 선생님이 부임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스무 살 중반이 채 되지 않은 '패기 넘치는' 젊은 남자 선생님이었으니, 남달리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선생님이 학생 김하리의 담임이 됐다.

대한민국에 100년 역사가 넘는 학교는 그다지 많지 않다. 풍기초는 100년 역사가 넘는 전통 있는 학교였지만, 문예반조차 없었던 시골학교였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희망'과 '꿈'을 키워 주기 시작했다. '동시를 배우겠다'는 아이들을 이끌고 남원천에 손과 발을 담그고, 느낌을 동시로 표현하게 했다. 아이들은 햇볕에 달구어진 조약돌을 만지고, 파란 하늘을 바라 보며 논밭 사잇길을 달렸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노래를 부르며, 나뭇가지가 찢어지도록 달린 사과밭에서 '시심(詩心)'을 키웠다.

백지같은 소년, 소녀 가슴에 무심히 지나쳤을 소소한 일상은 소중하고, 투명한 시(詩)로 태어났다. 김하리는 '시인(詩人)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1990년 등단한 김하리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대표시집 <사랑 탈출>  등 13권,  대표 수필집 <푼수가 그리운 시대> 등 4권을 내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하리온 뮤직 대표도 맡고 있다.

이번 시집은 초등학교 시절 시심을 심어 준 은사 조두희 선생과 함께 한 50년의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김하리 시인은 "조두희 선생님을 만나면서 시를 알기 시작했고, 꾸불꾸불한 삶을 교정하며 살 수 있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11살 소녀가 환갑이 다되어가는 지금 그는 지금도 은사의 자택을 '친정집'처럼 드나든다고 했다. 조두희 선생은 평생을 초등학교 교사로 교편을 잡았다. 서울 화계초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뒤 부인 정기옥씨와 경기도 가평에서 농사를 지으며, 노년을 보내고 있다.

계간 '시인정신'으로 등단(황금찬 시인 추천)한 조두희 교장은 대표시집으로 <길에서 쓰는 편지>, <가슴 깊은 곳에 그려둔 그림> 등을 비롯해 16권의 시집을 냈다. 1999~2003년 시인정신 작가 회장을 맡았으며,  2002년 제3회 시인작가상을 수상했다. 2004년 국민훈장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스승 조두희(왼쪽)와 제자 김하리 시인

스승과 제자가 50년의 인연이 된 것은 조두희 선생의 '안방마님' 정기옥씨가 선배이기에 더 가까워졌다. 경기 가평 출신으로 풍기에서 짝을 만난 조두희 선생은 풍기가 '제2의 고향'이 됐다. 풍기는 인견도 유명하지만 유난히 사과밭이 많다.

김하리 시인은 "선생님은 지금도 사과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보고 싶은 얼굴들이 많이 떠오른다고 하신다"고 전했다. 시집은 은사와 작가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녹아 있다.

오래전에 스승과 제자는 나란히 시인이 됐다. 잠깐 만난 사제지간이 50여년을 함께 한 스승과 제자가 엮은 시집 <사과꽃 피면 보고 싶은 얼굴들>은 그래서 한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고 의미가 깊다. 삶의 진솔된 이야기들이 풍기의 사과꽃 향기처럼 피어나 한파를 녹이고 있다.

김하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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