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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세상읽기] <11> '일상의 소중함'에 감사하다■ 베르메르 <우유 따르는 하녀>
조경희 전문위원 | 승인 2016.12.17 16:00
얀 베르메르(Jan Vermeer), <우유 따르는 하녀 The Kitchen Maid>, 1658, Oil on canvas, 45.5 x 41 cm,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소장.

창으로 들어오는 은은한 아침빛이 여인의 이마에 부딪힌 후 따사로운 온기로 노란색 상의에 머물다 마침내 물병에서 흘러나오는 하얀색 우유 줄기에 도달한다. 빛의 흐름에 따른 시선의 종착지 주변에 여인의 튼실한 몸매만큼이나 두툼한 빵이 먹음직스럽게 놓여있다. 갓 구운 빵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빛으로 대상에 따스한 정감을 표현하며 시대의 미감을 한 폭의 그림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화가 베르메르(Jan Vermeerㆍ1632~1675ㆍ네델란드).

실내 풍속화를 많이 그렸던 그는 잘 짜여 진 화면구도와 정확한 묘사력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할 뿐만 아니라, 카메라옵스큐라를 비롯한 광학 기구의 사용으로 빛과 색채의 비밀을 풀어내듯 아름다운 영상미를 연출, 메시지를 전하는 화가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는 우리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얼마나 느끼며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소박한 부엌에서 묵묵히 그날의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우유를 따르고 있는 여인은 시인 정지용의 <향수>에 나오는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를 떠올리게 한다. 기름진 고기반찬은 없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드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을 닮았다.

여인이 입은 옷은 청교도의 '절제' 미덕이 느껴질 만큼 단순하지만, 화가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노란색과 파란색의 색채대비를 통해 그녀의 평범함에 신성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앞치마에 사용된 파란색은 주목할 만하다. 값비싼 청금석을 갈아 만든 파란색 안료는 성모 마리아의 옷이나 고귀한 신분의 사람에게만 사용해오던 것이 관례. 당시의 소위 '색채 계급학'은 신분이 낮은 사람을 그리는 데 이처럼 귀한 재료를 사용하는 걸 꺼렸다. 루이14세 치하의 프랑스를 비롯한 주변국에서 유행하던 바로크 미술은 주로 역사적 영웅, 왕족과 귀족의 초상, 종교적인 내용의 그림이 주로 그려지던 상황. 그렇기에 하녀가 주인공인 것도 놀라운 일이건만 값비싼 재료를 사용해서 옷을 색칠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베르메르는 '갓난아이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구하라'는 성서의 비유를 의인화한 듯 눈이 시리게 파란 울트라마린 블루를 하녀의 앞치마에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화가로부터 고전적 품위와 기품을 선사받은 하녀는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위대한 경건의 순간으로 승화시키는 신성한 존재가 된다. 부엌에 정적이 흐른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 조각상처럼 멈춰선 찰나, 우유가 흐르는 소리만이 들릴 뿐.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Edle Einfalt und Stille roe)'라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이런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했던 이유는 두 가지. 베르메르가 활동했던 17세기의 네델란드는 구교와 신교의 갈등이 일찌감치 종식되고 자유로운 국제무역으로 시장과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게 된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시민의식이 싹튼 곳이다. 이런 배경으로 화가의 자의식이 높아져 기존의 왕ㆍ귀족ㆍ교회 등 후원자에 의한 주문자 생산방식이 아닌, 작가의 생각과 개성을 표현하게 된다. 후원자 없이도 독립적인 활동으로 먹고 사는 프리랜서 화가의 출현이 그 이유다.

또 신분에 상관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화가의 아름다운 내면이 그것이다. 여인의 뒤쪽 발치에 있는 작은 난로를 보더라도, 자칫 춥고 휑해 보일 수 있는 낡은 공간에 따스한 온기를 더해 부엌일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돕는 화가의 은근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다시 뒤편의 벽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박힌 못과 못을 박았던 자국들이 초라하고 밋밋한 벽에 세월을 덧입히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희생으로 인류를 구원한 것처럼 화가는 이 여인의 희생적인 삶을 그것에 비유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벽에 걸린 바구니와 주전자의 물질적 질감 하나까지도 철저히 계산해 균형 잡힌 화면을 구성한 화가의 꼼꼼함이 돋보이는 것도 잠시, 붉은 질그릇 물병에서 흘러나오는 가는 우유 줄기는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일상의 노동에 경의를 표하는 화가의 삶에 대한 진지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일에 임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파문이 일기 전에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기 어렵다.

권력을 이용해 이권을 챙기는 비양심적 소수의 국정농단으로 어지러운 시국을 보내고 있는 요즘. 모두가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범사에 감사하라.

조경희 전문위원  zzozzok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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