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사진/전수영 기자

행복은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삶의 화두다. 행복해지기 위해 공부하고, 일하고, 운동하고, 절대자를 찾고, 복권을 긁는다. 하지만 행복에 도달한 사람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접근 방법이 틀렸기 때문이다.

‘행복 연구가’로 알려진 서은국(50)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돈, 건강, 성공 등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이 행복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행복을 느끼게 하는 상황을 자꾸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고, 행복감을 전하는 가장 확고한 요소는 바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흥미롭고 유쾌하지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행복 이야기를 들어봤다.

-- 행복 연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 미국으로 유학 갈 때 행복 분야 권위자인 에드 디너 일리노이 대학교 교수의 논문을 보고 관심을 두게 됐어요. 심리학에서는 ‘행복’이란 말보다는 디너 교수가 만든 용어인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이란 말을 사용하죠. 저는 웰빙이나 행복이란 단어보다는 ‘주관적’이라는 말이 와 닿았어요. 인간에게 주관적인 게 참 많은데 행복은 오죽하겠나 싶어 공부하게 됐어요.

-- 행복을 연구하면서 새롭게 발견하거나 알아낸 것이 있습니까?

▲ 우리는 흔히 행복에 대해 직관적으로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해요.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닌데 그것이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죠. 행복을 연구하지 않았으면 뭘 알고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가장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행복이 어떤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좌지우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사람들은 고시에 합격하거나 복권에 당첨되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이에요. 실제 행복한 사람들에게 지난 몇 년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추적해 보면 개인 간에 차이가 크지 않아요. 누구나 좋은 일이 있기도 하고 나쁜 일도 겪죠.

행복은 어떤 큰 사건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작은 순간들이 많은 것이 중요해요. 행복은 즐거움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거죠. 별거 아닌 기쁨을 얼마나 자주 느끼느냐, 못하느냐가 행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가장 큰 차이에요.

-- 삶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인가요?

▲ 요즘 ‘긍정의 심리학’이라고 하면서 행복하려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을 왜곡하면서까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거죠. 싫은 것을 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연스럽게 ‘아! 좋은데’라는 느낌이 들게 되는 것들을 인생에 포진해 놔야 한다는 거죠.

뇌는 오래도록 진화하면서 생존에 필요한 것을 적절히 취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요. 혼자가 된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이 굉장히 어려웠죠. 같이 있어야 살 수 있었죠.

이런 호모 사피엔스가 같이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기재는 바로 쾌감이에요. 생존에 제일 필요한 것을 추구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미끼인 거죠. 식욕이나 성욕도 생존을 위한 쾌감이죠. 행복의 근원에는 결국 쾌감이 있습니다.

여러 쾌감 중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쾌감 전구가 켜지게 자극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에요. 지난 30년간 연구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은 그런 자원을 많이 두고 있는 사람이죠. 그 자원에 결핍이 생기면 무엇이 있어도 행복감은 높지 않아요. 별 볼 일 없어 보여도 주위에 좋은 사람이나 친구가 많으면 행복감이 높은 사람이죠.

서은국 교수. 사진/전수영 기자

-- 도대체 행복은 무엇입니까?

▲ 행복을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뭔가 객관적인 잣대가 없기 때문에 정의를 한다고 해봤자 개인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 거죠. 심리학에서는 행복의 정의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행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특성과 그들의 경험을 파악하죠.

행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대표 증상에는 세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기쁘다, 재미있다 같은 ‘긍정적인 정서를 얼마나 자주 느끼느냐’, 두 번째는 우울하다, 슬프다 등 ‘부정적인 정서를 얼마나 덜 느끼느냐’, 그리고 세 번째는 ‘삶에 얼마나 만족하느냐’라는 거죠.

심리학에서의 행복 연구는 이렇게 긍정적 점수가 얼마나 높은지, 부정적 정서가 얼마나 낮은지, 삶의 만족도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거예요. 이런 결과를 토대로 행복한 사람들의 특성은 뭐고,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알아보는 거죠.

-- 사람은 언제 행복을 느끼나요?

▲ 생사를 좌우하는 상황에 있는 동물에게 있어서 다가설 것이냐, 회피할 것이냐를 효율적으로 결정해주는 것은 감정이에요. 행복감은 다가서라는 신호이고, 두려움은 뒤로 물러서라는 거죠. 재미있는 것은 움직임이 없으면 감정도 사그라진다는 거예요.

행복감은 원하는 걸 향해 다가설 때 가장 고조가 되고 일단 갖게 되면 잠시 후부터 사라져요. 원하는 것을 내 가방에 모두 넣으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역설적으로 가방에 넣기까지가 가장 행복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가방에 넣을 것을 계속 만들어야 해요.

-- 행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 1980년대 중후반에 행복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요인과 별로 상관이 없고, 생각하지 못했던 요인과 직결된다는 것을 알아내게 됐어요. 행복의 조건으로 흔히 돈, 건강 등을 꼽는데 실제 연구 결과를 보면 이런 객관적인 조건이 행복을 예측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됐어요. 물론 의식주도 해결하지 못하는 곳에서는 중요하겠지만요.

예를 들어 회사에서 승진한다고 하면 우리는 행복감이 꽤 오래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하루나 이틀이면 낮아지고 없어져요. 우리는 이런 객관적인 조건의 약효가 금방 없어진다는 것을 계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대를 과대하게 하는 경향이 있죠.

심리학에서 볼 때 행복과 관련된 독보적인 변인은 외향성이에요.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좋아하는 사람을 인생 곳곳에 많이 심어놓는 사람이 행복한 거예요. 외향성에는 또 낙관성이 묻어 있어요. 선천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기질이 포함돼 있다는 얘기죠. 외향성은 가장 강력한 행복 예측치이죠.

-- 그렇다면 행복은 성격에 의해 좌우되나요?

▲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것을 외향성이라고 했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건 유전이에요. 모든 것이 유전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유전은 외향성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죠.

행복한 사람은 인생이 참 순풍에 돛 단 듯이 흘러간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착각이에요. 길거리에서 노숙자로 살아도 우울증 기질을 가진 갑부보다 행복할 확률이 훨씬 더 높을 수 있어요.

‘이제부터 외향적으로 살아야지’ 마음을 먹는다고 하룻밤 사이에 바뀔 수는 없어요.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심리학을 상품화하기 위한 과장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 노력한다고 행복해질 수는 없다는 건가요?

▲ 행복감은 결국 뇌에서 만들어지는 겁니다. 뇌가 행복감을 느끼도록 하는 상황을 자꾸 만들어줄 수는 있는 거죠.

예를 들어 어떤 전구는 스위치를 켜면 100% 불이 켜져요. 어떤 것은 70%, 어떤 것은 30% 켜지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100% 불이 켜지는 것에 전력투구하는 거예요. 가끔 켜지거나 잘 안 켜지는 것에 전력투구하면 그건 자원을 낭비하는 거죠.

가장 확고하게 전구를 밝혀주는 것은 바로 사람이에요. 주변에 좋은 친구나 가족도 없이 혼자 고독해 하면서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대인은 돈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처럼 전력투구해요. 돈은 쾌감을 유발하는 수단은 될 수 있어도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아요. 돈을 추구하다가 오히려 행복에 가장 중요한 가족이나 친구를 잃기도 하죠. 우리는 행복을 위한 최상의 투자전략이 아닌데도 여전히 돈에 전력투구하고 있죠.

-- 행복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 장기적으로 사람의 삶을 관찰해보면 행복감이 높은 사람은 일상에서 더 많은 것을 얻고 성공할 확률이 더 높은 경우가 많아요.

우리가 흔히 건강을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행복감이 높은 사람이 더 건강하고 병에 걸리거나 큰 수술을 받아도 생존 확률이 높아요. 긍정적인 정서를 느낄 때 면역 시스템이 강해지기 때문이라고 해요.

행복감이 높은 사람은 수명도 길어요. ‘수녀 연구’라는 게 있어요. 수십 년 전에 수녀가 된 날 써놓은 짧은 글을 보면 긍정적인 정서가 많은 수녀가 그렇지 않은 수녀보다 오래 사는 경우가 현격히 많았다는 놀라운 연구가 있었어요. 이후 연구를 봐도 긍정적인 정서가 높은 사람이 일관되게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나요.

-- 유엔이 발표한 ‘2016년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가 무척 낮습니다. 이렇게 만족도가 낮은 이유는 뭘까요?

▲ 한국은 일본, 싱가포르와 함께 경제 수준 대비 행복감이 낮은 군(群)에 속해요.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유교적인 가치관을 따르고 있고,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습성이 있다는 거예요.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행복 수준이 높은 것은 잘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관련이 없고 자유도가 높다는 데 이유가 있어요. 그들은 타인을 존중하면서도 눈치 보지 않고, 신경 쓰지 않고 살고 있죠.

한국, 일본, 싱가포르는 자유도가 너무나도 낮아요. 특히 한국은 심리적인 자유도가 굉장히 낮아요. 하고 싶은 일을 소신껏 하기 힘들고, 무섭고, 눈치 보이고 그렇다는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남의 시선과 평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는 행복을 추구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행복감은 본질적으로 자기가 느낀 경험이에요. 남을 설득할 필요도 없고 정당화할 필요도 없는 것이 행복인데 타인의 관점이 중요해지면 나도 행복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아야만 행복할 수가 있게 되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가 초연해야 하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인정받으려고 해요. 이렇게 자유도가 없는 상태에서는 차를 10대 굴려봤자 행복하지가 않아요.

-- 국가나 사회가 국민의 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요?

▲ 저는 정부가 최악의 운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유도만큼 중요한 게 상호신뢰도인데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상호신뢰도가 가장 낮아요.

우리는 매일 타인과 부딪히며 살아가지만 징그럽게 많이 내 집단과 가족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이런 것이 화목하고 좋아 보일 것 같지만 사실은 집단적인 이기심이죠. 내 동료와 부서, 가족에게는 간까지 내줄 것 같지만 바깥에 나가면 가족이나 부서를 위해 남의 등을 쳐도 괜찮다고 한다면 상호신뢰가 구축되기 어려운 상황인 거죠. ‘김영란법’도 결국 서로 믿지 못하는 데서 나온 거예요. 정부와 사회가 타인을 신뢰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고 그걸 강화하고 있죠.

언젠가 라디오에서 보이스피싱 예방 캠페인을 하는 것을 들었어요. “최고의 안전은 의심을 하는 겁니다”라고 해요. 물론 맞는 얘기고 이해는 가지만 국가가 만든 공익 캠페인에서 그렇게 하면 안 돼요. 교통 위반 사진을 찍어 신고하면 보상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부정, 부조리는 없어져야 하지만 상호 불신을 부각하면 안 돼요. 사람은 어떤 단어나 개념을 반복적으로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들어도 신경이 곤두서죠. 부패, 부조리를 척결하는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 그렇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 낭만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긍정적인 것을 부각해야죠. 싱가포르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적으로 굉장히 높지만 갤럽 자료를 보면 전 세계에서 긍정적인 정서를 제일 적게 느껴요.

매사가 규율이기 때문이죠. 규율을 지키기 위해 사는 것 같아요. 부정적인 정서는 행복에 적대시되는 코드예요. 부정적인 것이 지배적일 때는 악순환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 개인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행복을 위한 노력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타인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바로 내가 남이기 때문이죠. 인생의 ‘갑’은 바로 나죠. 자신은 ‘을’이고 다른 사람이 ‘갑’이고, 다른 사람에게 맞춰서 사는 것은 장기적으로 자신을 황폐시키죠.

또 우리는 너무 욕심이 많아요.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해요. 이건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이렇게 살면 정신병자가 될 수도 있어요. 좋은 아들, 좋은 사위, 좋은 남편, 좋은 부모가 되고자 하면서 행복까지 바라는 것은 욕심쟁이라고 생각해요.

타인을 신경 쓰지 않고 살려면 소신이 있어야 해요. 나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실행하는 결단이 필요하죠. 욕을 먹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거나 갈팡질팡하면 안 될 것 같아요.

-- 우리가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것을 긍정적인 정서의 부족에서 찾고 있던데요.

▲ 긍정적 정서의 부족이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한국사회의 약점 중 하나는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대표적인 예가 축구죠. 한국 축구의 한계는 바로 창의성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창의성을 만드는 것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가벼움이에요. 가벼움이 있어야 기발한 것이 나오죠. 회의할 때 넥타이 매고 앉아서 “자, 창의적으로 생각해봐”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예요. 우리는 일상이 너무 심각해요. 무겁고 경직된 분위기에서는 창의성이 절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언론 세이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