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국민에게 위로 필요…엄정한 처벌로 사회정의 실현해야"

청주에 사는 박모(69)씨는 요즘 들어 한숨을 쉬는 일이 잦다. 사소한 일로 가족에게 짜증을 내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치밀어올라 가슴이 답답하다.

평소 낮에는 뉴스를 시청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며칠 전부터 아예 TV도 켜지 않는다. TV에서 반복돼 나오는 '최순실 국정 농단' 보도를 볼 때마다 울화통이 터져서다.

[연합뉴스 DB]

박씨는 "최순실 사건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설마 설마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고, 비리가 쏟아지니 너무 허탈하다"며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은 원칙과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으로 철석같이 믿었고 수십 년간 일관되게 지지했다"며 "겨우 이런 모습을 보려고 지지했나 하는 생각이 들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사회적인 '집단 우울증'으로 진단한다.

국민의 기대가 분노와 실망감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김시경 충북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개인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지만,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집단적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며 "특히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이 무력감에 시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충동 조절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사람은 우울증의 증세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주의 한 정신과 의사는 "최근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상담하다 보면, 최순실 사건으로 인해 가슴이 더 답답해졌다고 털어놓곤 한다"며 "최근 정국이 국민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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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순실증'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최순실 일가가 국정 농단을 벌인 것은 물론, 축적 과정이 불명확한 재산이 수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실감과 무력감은 더 커진다. 지난달 31일 검찰에 소환된 최씨의 신발, 명품 가방이 온종일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달궜던 것도 '순실증'과 무관치 않다.

직장 생활 3년 차인 김모(31)씨는 "어렵게 취업해 생활하고 있는데, '돈도 실력이다. 부모를 원망하라'는 정유라의 언급을 생각하면 열심히 일해 뭐하느냐는 좌절에 빠진다"고 말했다.

'공시족'인 신모(30)씨는 "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몇년간 공부했는데, 이제는 책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전했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 대통령을 믿고 지지했던 사람들은 허탈함을 표출하고, 청년층은 원칙이 무너진 사회를 빗대 '이게 나라냐'라는 울분을 터트린다"라며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면 사회 전체가 우울증으로 빠져 자칫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 DB]

윤모(52)씨는 "최순실 관련 의혹이 제기된 지 몇 주가 지나도록 방관하다 뒤늦게 수사에 나선 검찰을 믿을 수 없다"며 "게다가 팔짱을 끼고 웃으며 조사를 받는 우병우 전 수석의 모습을 보고 검찰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비판했다.

우리 사회가 다시 정상적인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성역없는 수사를 통해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해당되는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상처받은 국민에게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데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 있어야 가능하고, 그래야 지금의 잘못된 사회적 부조리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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