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ㆍ총리 역할 분담 규정 놓고 각 정파간 해석 충돌

일단 공은 여의도로 넘어왔다.

'최순실 파문' 정국을 수습하려는 박근혜 대통령이 8일 국회가 추천한 총리를 임명해달라는 야권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이제 고민은 여야 정치권의 몫으로 던져진 것이다.

야권에서는 박 대통령의 권력 포기 의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들어 이를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벌써 총리의 역할론과 관련한 주장이 쏟아지고 총리 인선에 대한 하마평이 나도는 등 불붙기 시작한 논의를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을 넘긴 박 대통령이 새 총리의 권한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고 야권이 주장하고 '2선 후퇴' 뜻을 보다 더 분명히 하라고 맞서면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는 새 총리의 권한과 내각의 성격 등에 대해 그야말로 백가쟁명식 해법이 난무하면서 본격적인 협상에서 격론을 예고하고 있다.

◇ 과도정부인가 책임총리인가…대통령 권한 얼마나 내려놓느냐가 핵심

거국 중립 내각의 성격은 크게 과도정부와 책임총리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신임 총리가 일종의 과도정부를 꾸리고 대통령은 전권을 넘긴 채 사실상 퇴진에 가까운 2선 후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여기에는 조기 대선론도 포함된다.

민주당 소속의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등 주로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는 인사들이 큰 틀에서 이런 입장이다.

전병헌 민주당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지금 상황에서 거국중립내각은 '과도 중립 관리내각'으로 규정돼야 한다"며 "대통령 권력의 공백을 대신하고 더 이상 상황이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새로운 내각 본연의 임무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썼다.

반면, 국방·외교 등 외치(外治)는 대통령에게 그대로 맡기고 내치(內治)를 전담하는 책임 총리가 알맞다는 목소리도 있다. 주로 여권 인사들이 이런 견해에 동참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 총리가 많은 권한을 갖고 국정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런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두 가지로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며 서로 뒤섞인 주장도 존재한다. 결국, 핵심 쟁점은 대통령이 권한을 얼마나 내려놓을지에 대한 입장 차이로 귀결된다. 또 이에 따라 총리 적임자를 고르는 기준도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의 한 중진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과도정부로 가서 조기 대선을 할 것이냐, 책임 총리로 임기를 마칠 것이냐를 먼저 정해야 한다"며 "두 가지 경우에 따라 적당한 사람이 다르다"고 말했다.

여권에서는 현 국면에서 총리 권한의 법적 규정보다는 정치적 의미 권한이 훨씬 중요하다는 애기가 나온다.

헌법에 총리의 권한을 내각 통할권, 국무위원 제청권, 각료해임 건의권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법 규정에도 없는 '국회 추천 총리'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를 거친다면 사실상 총리 임명권이 국회로 넘어온다는 점에서 법적 권한의 자구에 구애됨이 없이 정치적으로 막강한 권한이 총리에 부여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 인선은 더 복잡…야당 입장도 정리 안 되는데 여당·청와대도 고려해야

누가 총리를 맡을지의 문제로 넘어가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일단 총리 인선의 주도권을 쥐긴 했지만, 야당의 내부 사정이 각기 다른 계파별 셈법으로 난마처럼 복잡한 가운데 여당과 청와대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새 총리 후보로는 한때 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 대표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이 거론됐지만, 민주당 내 최대 계파인 친문(친문재인)측은 두 사람이 여권에서 먼저 거론된 인사라는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두 명 다 강경한 개헌론자라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최근 여의도에서는 고위 관료 출신의 야권 인사에 대한 총리 제안설이 횡행하는 등 아직 총리 인선은 뚜렷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총리 추천을 '콘클라베'(외부와 격리된 채 교황을 선출할 때까지 계속하는 비밀회의) 형식으로 그야말로 '끝장 합의'를 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거국중립내각의 취지를 존중하겠다며 일단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지만, 골라주는 대로 무조건 동의하지 않겠다는 속내도 엿보인다.

이정현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여당도 거국중립내각의 추천권을 가진다"며 "국회에서의 역할을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또 "거국중립내각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정신을 살려가야 한다"며 "야당이 추천하는 인사는 가급적이면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여야가 합의하더라도 막판 청와대가 난색을 보이면 다시 어그러지고 정국이 경색될 가능성도 있는 등 그야말로 거국 중립 내각의 총리 인선은 고차원 방정식처럼 복잡한 형국이다.

일단 야권이 먼저 거국 중립 내각의 성격에 대해 의견을 모은 다음에 인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전망이다.

민주당 박완주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의 2선 후퇴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다음이 총리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방법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며 "내일 야 3당 회동해서 2선 후퇴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내일모레쯤 의원총회를 해야 한다. 누가 총리 할지는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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