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콜리어 '레이디 고디바'

▲ 존 콜리어(1850~1934)의 '레이디 고디바'
▲ 존 콜리어(1850~1934)의 '레이디 고디바'

유부녀라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리여리한 몸매의 누드, 초콜렛 빛 머리카락으로 가슴을 가린 채 수줍은 듯 시선을 떨군 아름다운 이 여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그림을 보면서 단순히 1980년대 영화 '애마 부인'의 포스터를 보듯 에로티시즘을 떠올린다면 그건 주인공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림속 여인은 11세기 잉글랜드 코벤트리 지방 영주 레오프릭의 아내, 고디바.

홍차의 나라 영국을 상징하듯 화면을 압도하는 붉은 빛은 그녀의 고결한 정신을 상징하는 백옥 같은 피부와 대조되면서 화면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게다가 황금 빛 사자 문양은 단박에 그녀가 고귀한 신분임을 드러내 준다.

상류층의 정숙한 부인이 왜 하필 알몸으로 말을 타고 있을까. 시집 온 이후로 그녀에겐 근심이 생겼다. 사랑하는 남편은 대단한 물욕의 소유자였다. 과도한 세금징수로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면서 근심은 커져만 갔다. 착취는 갈수록 심해져 백성의 삶은 곤궁하다 못해 피폐하기 이를 데 없어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여느 상류층의 부인들이 그렇듯 화려한 드레스와 파티로 사치스런 나날을 보내기 위해 남편의 탐욕적 실정을 묵인할 수도 있었지만,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줄 알았던 그녀는 백성의 고단함을 외면할 수 없었다.

"세금을 낮춰주세요. 백성들이 너무 힘들어 해요."

그의 간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남편.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남편을 설득하는 고디바.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의 간청을 듣다 못한 남편은 빈정대듯 한마디 내뱉는다.

"당신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돈다면 그리 하겠소."

당연히 거절할 것을 예상하고 한 말이었으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던 고디바는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대답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감동한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마을을 돌기로 한 시각에 창문까지 모두 걸어 잠그고 내다보지 않기로 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고귀한 영혼의 그녀가 마을 대로에 나타나고… 마을 사람들은 집안에서 숨죽이며 내다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킨다.

자신의 무리한 요구를 묵묵히 이행한 부인을 보고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남편. 그녀의 희생으로 백성들의 삶은 고단함을 덜 수 있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못할 것이 없는 비양심적인 사람도 있지만, 자신이 굳이 겪지 않아도 될 힘든 일을 자청하면서까지 약자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전자와 같이 국정농단의 주모자이면서도 반성과 사과는커녕 오리발을 내미는 작금의 현실에서 후자에 합당한 고디바의 누드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릴 만하다.

<레이디 고디바>를 그린 작가 존 콜리어(John Collier·1850~1934)는 영국 출신으로 라파엘전파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지만, 그의 작품은 교훈적 성향을 띠며 잘 짜여진 구도를 추구하는 신고전주적 경향이 짙다.

벨기에 한 초콜렛 장인이 고디바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자 그녀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런칭하게 되고, 지금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의 쿠벤트리에 가면 그녀의 정신을 기리는 동상이 있다고 한다. 

■ 조경희 미술팀 전문위원 = 충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한 뒤 동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충북 단양군에서 교편을 잡은 뒤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충북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하며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 서울 성수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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