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의 이슈분석 <37>

50개주의 연합국가인 미국은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 답게 다양성을 추구한다. 전 세계에서 수입한 문화가 어우러져 생동하는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거대한 영토. 3억명이 넘는 인구, 산불, 허리케인 등 해마다 발생하는 재난은 미국을 깊은 시름에 빠뜨리기도 한다. 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피로 쓰여진 안전규정과 복잡한 인프라는 미국의 고민을 대변한다.

미국을 지키는 힘 가운데 하나인 소방대원은 존경의 대상이다. '그들이 나와 가족을 지켜주는 전문가'라는 믿음이 존재해서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 속의 소방대원은 영웅이자 슈퍼맨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문명화된 국가 가운데 화재에 취약한 나라로 꼽힌다. 매년 3만여명의 소방대원이 부상을 입고, 60~80명은 순직한다. 총기소지가 허용되다 보니 소방대원이 임무를 수행하면서 총기사고를 당하는 일도 발생한다. 미국 구급대원이 방탄조끼를 착용하고 출동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미국은 3만개 소방서에 114만명 이상의 소방대원을 거느리고 있다. 생명을 위협받는 직업이지만 젊은사람은 여전히 소방대원이 되기를 희망한다.

미국은 소방대원을 채용할 때 무엇보다도 전문경력과 자격을 요구한다. 소방의 존재감은 바로 현장 전문성이기 때문이다. 미국소방은 간부후보생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밑바닥에서부터 차근 차근 경험과 지식을 쌓아 올라 간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근속승진도 없다.

계급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 소방대원으로 살아간다.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소방대원을 위한 국가차원의 정책지원과 시민의 적극적인 응원 덕분이다.

어느 한 지역사회 안전을 고민할때도 모든 정책의 중심에 소방대원이 있다. 건강하고 안전한 소방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국가정책, 소방대원의 보건과 안전을 연구한 방대한 자료와 데이터, 매년 40개국 이상이 참여하는 소방엑스포 등 소방대원이 중심이 돼 '안전한 미국'을 만들어 간다.   

순직 소방대원을 추모하는 날, 연방정부는 조기를 걸고 대통령은 추모식에 참석해 기도한다. 도지사, 시장, 의원은 하루 일정을 비우고 소방훈련에 참여해 소방대원의 고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 보험회사는 소방서를 등급별로 평가한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신뢰성 있는 데이터를 제공하고 등급이 높아 상대적으로 안전한 소방서가 있는 지역은 보험료를 인하해 준다. 마치 한 마을의 사랑방처럼 시민이 편안하게 소방서에 드나들고, 아이들의 생일잔치를 위해 흔쾌히 소방서를 개방한다. '소방서는 세금을 내는 시민의 것'이라는 말처럼 시민의 삶 속 깊숙히 들어가 호흡하고 생활한다.

'월급보다 명예를 먹고 산다'는 미국 소방대의 어깨는 그래서 항상 자신감에 차 있고, 사명감으로 넘친다. 소방대원이 일을 더 잘 할수 있도록 보살펴 주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미국은 33개주 이상에서 '암추정법(Presumptive Disability Law)'이 발효, 소방대원이 임무수행 중 암이나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 직무와의 연관성을 인정해 보상해 준다. 유가족 네트워크를 운영해 영웅의 가족이 불편하지 않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다르다. 아프면 자신이 직접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소방관이 의학적 근거를 기초로 직무연관성을 입증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공무상 부상과 사망 승인율은 현저히 낮은 수치다. 유가족은 3년 가까이 소요되는 소송이라는 또 다른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국가가 도움이 되기는 커녕 장애물이 아닌가 느껴질 때가 있다. 

미국소방의 모습이지만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방대원이 어떻게 하면 보다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임무를 수행할지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소방은 진화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미국소방을 벤치마킹 하려 한다면 소방관을 어떻게 대우하고 예우하는 지부터 배워야 한다.        

이건 세이프타임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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