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90㎞ 속도제한장치 3분이면 해제, 최고 130㎞ 운행…年 6000대 과속 적발

운송은 약속이다. 화물차가 고장이 나더라도 예기치 못한 사고가 나더라도 운송에 실패하면 계약 파기다.

 

배송을 맡긴 물건 주인 '화주'와 약속이 깨지면 상품값을 물어줘야 할 수도 있고, 다음 일감을 얻기 힘들어진다.

4.5t 화물차를 모는 박모(51)씨는 활어를 가득 싣고 전남 완도와 서울을 오간다. 그는 지난 30년간 각종 화물을 차를 운전해 생계를 이었다. 활어 운송차량을 몬 지는 2년째다.

13일 오후 6시께 완도군 수산물 유통센터에 양식장에서 갓 출하한 어패류가 모이기 시작했다.

싱싱한 수산물을 전국 각지로 운송하려는 업자들도 화물칸에 수족관이 달린 트럭인 '물차'를 몰고 속속 모여들었다.

이날 박씨는 살아있는 광어 1t을 물차에 실었다. 수도권 수산시장 경매 시작 시각은 오전 2시다.

완도에서 서울 노량진수산시장까지 거리는 약 450㎞. 차량 통행이 원활할 경우 고속도로 규정 속도인 시속 100∼110㎞로 쉬지 않고 달리면 약 5시간 30분이 걸린다.

 

휴게소에서의 휴식 시간과 차량 정체 등을 고려하면 평균 6∼7시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오후 7시께 박씨는 양식장에서 뒤늦게 도착한 광어를 마지막으로 싣고 완도에서 출발했다. 7시간 후인 다음날 오전 2시까지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을 거쳐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에 도착해야 한다.

대형 화물차량 규정 속도인 시속 90㎞로 가려면 박씨는 단 한 순간도 쉴 수 없다.

박씨는 "목숨이 달렸는데 과속을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속도를 지켜 운행하면 6∼7시간이 걸리는데 동안 졸음과 싸워가며 쉬지 않고 운전해도 빠듯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3.5t 초과 화물차는 90㎞/h의 최고 속도 제한장치를 의무 장착해야 한다.

무단 해체했을 경우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지만, 과속을 선택하는 화물차는 적지 않다.

경찰청과 감사원에 따르면 2011년 1월부터 올해 4월 15일까지 화물·특수 차량 2만9천606대가 시속 90㎞ 이상으로 운행하다 과속 단속에 적발됐다. 단속 건수로는 7만2천563건에 달한다.

전국에서 매년 6천대 화물차 속도제한장치를 풀고 달리다 단속 장비에 적발된 셈이다.

부산에서 대형 트레일러는 모는 김모(48)씨는 "속도제한장치 탓에 운행 시간이 길어지고, 졸음운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면서 "10분이라도 빨리 도착해서 쪽잠이라도 자고 싶은 것이 운전 기사들의 마음"이라며 하소연했다.

김씨는 어패류 같은 신선식품은 시간을 못 지켜 폐사하는 등 운송 문제가 생기면 수백만원에 달하는 상품값을 운전기사가 물어줘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차 고장 등으로 경매 시작 시각에 물건을 대지 못해도 책임은 고스란히 화물 운송 기사에게 돌아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당수 화물차 운전기사는 암암리에 속도 제한 장치를 해제해 주는 튜닝업자를 찾는다.

이들은 고속도로 휴게소 등지에서 현금 20만∼30만원을 받고 최고 속도를 110∼130㎞/h로 높여준다. 프로그램을 이용해 엔진제어장치(ECU)를 조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2∼3분이다.

전남 완도에서 서울까지 규정 속도보다 20㎞/h 빠른 110㎞/h로 운행하면 소요 시간을 약 30∼40분 단축할 수 있다.

이 시간이면 휴게소에서 식사하거나 쪽잠을 자는 등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경찰청은 지난 7월 18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75일간 대형 승합차와 3.5t을 초과하는 화물차의 속도 제한장치 무단 해체업자 단속에 나서 10명을 검거하고, 제한장치가 해체된 차량 3천317대를 확인했다.

경찰은 단속을 강화할 계획이지만, 무리한 운송 일정을 요구하는 화주는 내버려둔 채 운전기사만 처벌하는 것은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게 운송업계 주장이다.

대부분 운전기사는 화물의 양과 운행 건수에 따라 운임을 받는다.

경기가 좋지 않아 물건을 맡기려는 사람은 적은데, 화물차는 넘쳐나는 상황에서 화주가 무리한 운송 요청을 해도 거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업계는 설명한다.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관계자는 "화주가 '갑'인 운송업계에서는 과속·과적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다"면서 "기사에게 일정 수익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한다면 위험 운전도 자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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