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에 파업·물류대란 등 겹쳐 경기보완 필요성 커져

경제 성장률 하락(그래픽)제작 김해연

정부가 올해 성장률 목표 2.8% 달성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이어 다시 10조원 규모의 정책패키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수출이 부진을 이어가고 소비와 투자까지 불안한 흐름을 보이는 등 경제지표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는 가운데 갤럭시노트7 리콜, 한진해운 발(發) 물류대란, 태풍 차바 피해 등 예기치 못한 악재까지 겹치면서 경기보완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심정"으로 경기보완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정책수단을 통해 경기보완에 총력을 기울이면 올해 성장목표 달성도 가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례적으로 4분기에 경기보완책을 마련할 정도로 경제여건이 어려워진 만큼 2.8% 성장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경기 회복세 미약한데…눈앞에 악재 또 악재

경제관계장관회의(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정부가 추가로 재정보강 카드를 꺼내 든 것은 각종 악재 때문에 올해 목표로 한 2.8% 성장률 달성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정부는 우리 경제가 3분기까지는 예상한 성장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문제는 4분기에 들어서면서 대내외 하방 위험이 곳곳에서 돌출해 현재의 성장세를 장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소비, 투자, 수출 등 어느 부문에서도 긍정적인 요인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달 28일 시행된 금품수수 및 부정청탁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으로 내수는 당분간 위축될 수밖에 없는 데다, 정부가 7월 발표한 노후 경유차 교체 시 개소세 감면 조치 역시 국회 입법 지연으로 효과를 보기는 요원한 상황이다.

현대자동차 파업과 삼성 갤럭시노트7 리콜사태는 전체 산업생산은 물론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한진해운[117930] 법정관리 등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고용 시장 한파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날에는 때아닌 가을 태풍 차바까지 몰아쳐 현대자동차 공장이 침수돼 가동 중단 사태가 빚어지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특히 태풍 피해가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지역 경기가 침체된 부산과 울산 등 경남지역에 집중됐다는 점이 우려를 키우고 있다.

대외여건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 북한의 핵도발까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한국 경제에 부담을 지우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뚜렷하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하방 리스크가 밀려오자 결국 정부가 나서서 경기 마중물을 붓기로 한 것이다.

◇ 재정·정책금융 활용 10조원 패키지 마련…민간소비 확대 유도

정부는 이번 10조원 이상의 정책패키지에 대해 "경기 미세보완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풍 차바> 조업 중단된 현대차 울산2공장(울산=연합뉴스) 장영은 기자 = 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내린 비 때문에 물이 차 조업이 중단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2공장 생산라인 모습. 싼타페와 아반떼 등을 생산하는 이 공장은 6일 생산라인을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 제공=연합뉴스]

김영란법과 한진해운 발(發) 물류대란, 파업 등으로 4분기 성장 경로가 예상을 벗어날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선제적인 경기 보강에 나서면 우리 경제의 성장궤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일호 부총리는 이날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는 경제활력 회복과 체질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책수단을 마련해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경기 보강을 위해 최우선으로 꺼내 든 카드는 10조원 이상의 '재정보강+정책금융' 패키지다.

4분기에 예정된 추경 등 재정보강 집행 잔여분 16조6천억원을 최대한 신속히 집행하는 것과 별도로 중앙·지자체·지방교육청 예산집행률 제고, 지자체 추경 확대, 공기업 투자 등을 통해 6조3천억원 규모의 추가 재정보강을 추진한다.

여기에 수출금융패키지 30억달러(3조3천억원) 규모와 기업투자촉진프로그램 집행규모 확대(5천억원) 등을 더하면 10조원 이상의 추가지원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재정보강은 우리 경제의 민간부문 활력이 떨어진 데 따른 '고육지책'에 가깝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경제 성장률은 2.6%로, 이중 재정기여도가 3분의 1가량인 0.8%포인트(p)를 차지했다.

올해 1분기 우리 경제 성장률(전기 대비) 0.5%에서 민간부문 기여도는 제로(0)인 반면 정부 부문은 0.5%포인트로 집계됐다.

사실상 최근 경기가 정책효과에 의존하고 있어 민간투자나 소비가 살아나기 전까지는 정부가 재정과 정책금융을 통해 경기를 끌어올리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재정패키지 외에도 신용카드 포인트 활용도 제고, 코리아세일페스타 등을 통한 소비 활성화 분위기 조성, 지역관광 활성화 및 국산 농축수산물 소비 확대 등 내수 활력을 제고하기 위한 각종 정책도 추진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올해 3분기까지는 우리 경제가 성장목표에 근접한 모습을 보였다"면서 "4분기에 각종 하방 요인이 있으니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정책 노력을 강화하면 연간 2.8%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재정보강은 위기감의 표현…2.8% 성장 쉽지 않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후 한산한 식당의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례적인 4분기 재정보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효과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올해 정부의 목표 성장률 달성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내·외수가 동시에 나빠지는 경우가 드문데 양쪽이 모두 좋지 않고 투자심리 위축, 김영란법으로 인한 소비 감소, 수출·수입 감소에 따른 경상수지 흑자 감소 등 수치 면에선 위기감이 팽배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의 재정보강 대책은 위기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4분기에 새삼 재정보강을 할 정도로 나선 것은 그만큼 경제 상황이 위중하다는 신호효과가 될 수 있어 효과는 잘 모르겠다"며 "올해 목표 성장률 달성은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3분기까지는 개소세 인하와 같이 정부 쪽에서 돈을 푼 효과가 있었지만 4분기에는 이러한 조치가 없다"며 "정부에서 별다른 조치 없이 이대로 가면 2.8% 성장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인식이 이번 대책에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체적으로 보면 재정보강 효과는 마이너스(-)보다는 플러스(+)일 것"이라면서도 "올해 2.8% 성장 달성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김영란법 등이 불러올 내수 전반의 위축이 4분기에 가장 우려해야 할 대목인 만큼 내수의 불씨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윤 교수는 "김영란법으로 한계 자영업자들이 상당 부분 문을 닫고 여기에서 가계·기업부채 부실이 발생할 것"이라며 "이어 금융기관까지 연쇄적으로 힘들어져 도미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금리 인하, 재정정책 등 거시정책은 이제 한계를 보인다"며 "기업이 조금이라도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미시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주 실장은 "소비절벽과 투자 위축이 가장 크게 우려되는 점"이라면서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할 수 있도록 세금 감면, 규제 완화 등에 신경 써야 경기 회복이 가시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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