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농기계 사망자 66% 증가…교통사고 사망자 27% 감소와 대조

농촌 곳곳에서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농기계 사고로 목숨을 잃는 농민이 속출하고 있다.

힘든 농사일 중간에 새참과 함께 술을 마셔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농기계를 운전하면 자칫 큰 사고를 당할 수 있다.

대부분 고령자인 농민은 시중에 판매되는 주류 중 도수가 그리 높지 않은 막걸리 몇 잔에도 인지능력이 쉽게 떨어진다. 이 때문에 농기계 조작 실수로 사고를 낼 가능성이 크다.

지난 25일 충북 단양군 영춘면 도로에서 농민 A(74)씨가 몰던 경운기가 왼쪽으로 넘어져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나흘전인 21일에도 옥천군 야산 비탈에서 경운기가 길가 3m 아래 비탈로 굴러떨어져 농민이 깔려 숨졌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추이를 볼 때 교통사고 발생 건수와 부상자는 꾸준히 줄었지만, 농기계 사고 사상자는 증가했다.

2006년 농기계 사고 발생 건수는 361건이었지만, 지난해에는 500건을 기록했다.

2006∼2010년 농기계 사고로 한 해 평균 48.6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2011∼2015년에는 그 수가 73.4명으로 증가했다. 5년치씩 비교할 때 농기계 사고 사망자가 66% 늘어난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교통사고 사망자가 27%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농촌진흥청과 경찰 등은 농기계 사고를 막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농기계 사고의 90% 이상은 전방 주시 태만, 판단 잘못, 조작 미숙 등 '인적 요인'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새참 때 막걸리 등 주류를 곁들이는 농사 문화에 주목, 상당수 농기계 사고가 음주와 관련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경운기 등은 음주단속 대상이 아니어서 관련 통계는 없지만, 농기계 사고의 20∼40%는 술과 연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경운기, 트랙터, 콤바인 등 농기계는 농업기계화촉진법상 농업기계로 분류돼 도로교통법 제80조에 따른 자동차운전면허가 필요 없다.

도로교통법상 자동차에 해당하지 않아 음주단속 대상도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농촌 지역 경찰은 술을 마신 농민을 위해 경운기 대리운전 기사를 자처하기도 한다.

충북 보은경찰서는 2014년 4월부터 영농현장에서 술을 마신 농민의 경운기를 대신 운전해주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보은경찰서 관계자는 "농민들이 고령인 데다 농작업 중 음주하는 경우가 많아 사고예방 차원에서 강구한 대책"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농기계 사고 치사율은 16.85%로 일반 차 사고(2.3%)보다 7.3배나 높다. 경운기 음주 운전은 자동차 못지않게 위험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농업용 기계가 증가하는 추세에 맞춰 음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랙터나 경운기 같은 승용 농기계는 자동차와 다를 바가 없다"면서 "보호 장치가 없는 농기계 음주 운전은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경숙 국립농업과학원 농작업안전보건연구실장은 "술을 마시고 운전하면 농기계도 순간 흉기로 변할 수 있다"면서 "일반 자동차에 준하는 단속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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