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클러 설치 않고 드라이비트 마감 그대로…주민들 불안 호소

올 초 130여명의 사상자를 내 '후진국형 참사'로 기록된 의정부 아파트 화재. 의정부3동에 위치한 이 피해 건물에 대해 안전 취약성을 전혀 극복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강공사가 진행돼 마무리 작업 중인 것으로 연합뉴스 취재결과 확인됐다.

사고 당시 안전을 내팽개치다시피한 '도시형 생활주택'의 문제점 등이 드러나면서 관련 규제가 강화됐으나 새로 도입된 법과 제도를 이미 준공된 건물에 소급적용할 수 없다는 게 행정 당국의 설명이다. 기존 세입자들과 이웃 주민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쳐도 욕을 먹는데, 이는 그마저도 안 한다는 것"이라며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9일 의정부시에 따르면 불이 처음 난 '대봉그린아파트' 옆 쌍둥이 건물인 '드림타운'의 정밀안전진단과 보강공사가 지난 9월 22일 완료돼 외벽, 인테리어, 전기·가스설비 등 마무리 공사만 남겨두고 있다.

대봉그린아파트와 드림타운은 이명박 정부가 1∼2인 가구의 증가 추세에 따라 새로 도입한 원룸형 '도시형 생활주택'이다. 주차장·진입도로 기준 완화, 관리사무소·비상급수시설 면제, 공공주택의 건물 간 간격 거리 배제 등 규제가 대폭 완화돼 지어졌다.

게다가 이 건물은 10층짜리임에도 살수기(스프링클러)가 전혀 설치되지 않았고, 양쪽 외벽은 불에 잘 타는 소재인 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바른 단열재(드라이비트) 공법으로 마감됐다.

설계 때부터 화재에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기에 결국 끔찍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 같은 문제점은 당시 화재 진압에도 참여했던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소속 한진영 소방경이 지난 8월 석사 논문으로 발표한 '도시형 생활주택의 화재 위험성에 관한 연구'에서도 재차 지적됐다.

한 소방경은 "안전 규제를 완화하면서 생긴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 의정부 아파트 화재"라면서 "필로티 주차장에 대한 화재안전을 강화하고 가연성 외벽 단열재 사용을 금지하는 등 여러 가지 개선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 사고 이후 서울시 등 지자체마다 6층 이상 건물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국토교통부는 준다중이용 건축물에 대해 규모와 상관없이 유독가스를 제거할 수 있는 배연설비를 설치하도록 하는 등 규제를 한층 강화했다.

그럼에도, 정작 의정부 화재 건물은 안전에 대한 보강이 전혀 없이 그저 원상복구만 하고 새 세입자를 들일 준비에 바쁘다.

이 같은 소식을 전해 들은 주민들은 아연실색하고 있다.

드림타운 세입자 권모(38·여)씨는 "건물을 드라이비트로 또 덮는다는 건 보강공사가 아니라 화재 흔적을 감추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시청에서 이런 걸 허가해줬다니 너무 상식 밖이라 믿을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화재현장 맞은편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주민 김모(47·여)씨도 "보강공사 자체도 안전장치 없이 진행하고 있어 지나다닐 때마다 늘 불안하다"며 "또 불이 나면 어떻게 할 건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기자가 직접 현장을 찾은 지난 3일 근로자들은 안전모도 착용하지 않은 채로 공사작업이 한창이었다.

드림타운 A 대표는 "옆 건물에서 불이 시작됐으니 우리도 피해자인데 집주인들이 갹출해 보강공사를 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1억5천만원이나 되는 스프링클러를 어떻게 설치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A 대표는 화재 쓰레기 더미에 있던 드라이비트를 기자에게 보여주며 "불은 자동차 열기 때문에 확산된거지 드라이비트 탓이 아닌데 보도가 잘못됐다"면서 "그러니 시청에서도 이렇게 다 허가를 내줘서 공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의정부시 안전총괄과 관계자는 "시에서 강제할 수 있는 법이나 제도가 없다"면서 "현재로선 건물주가 양심에 따라 화재 취약성을 보완하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지난 1월 10일 오전 9시 10분께 의정부3동 대봉그린아파트 필로티 주차장에 주차된 오토바이에서 시작된 불로 도시형 생활주택 3동 253가구와 인근 숙박시설 1동, 단독주택 3동, 차량 63대가 탔다. 이 때문에 5명이 숨지고 129명이 다쳤다.

발화 원인과 화재 확산 등에 대한 책임을 가리기 위한 재판은 화재 발생 1년 가까이 된 지난 7일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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