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의 이슈분석 - 32] 기본과 원칙에 누구도 예외는 없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연일 화제다. 독설과 막말, 기이한 행보로 미국은 뜨거운 논쟁의 장이 되고 있다. 그의 거침없는 행동을 추종하는 사람까지 가세하면서 자신감에 찬 도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도 안전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그는 지난 3일 오하이오 전당대회에서 가급적 많은 청중을 대회장에 수용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관할 소방당국은 참석한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건물 내 수용인원을 1000명으로 제한했다. 트럼프는 "시장이 민주당 당원이어서 그런 것 아니냐"며 소방당국의 조치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소방당국은 "마땅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며 "건물내 수용인원에 대한 결정은 소방법에 의한 것이지 정치적인 의도가 없다”며 일축했다.

미국과 비교해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은 허점투성이다. 2014년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사고로 1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그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다수가 모이는 공연장은 여전히 안전 사각지대다. 일부 공연장은 공연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피난유도등을 가려 놓거나 설치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나 정부종합청사를 방문해 보라. 그럴듯한 공청회나 세미나가 수도 없이 개최되지만 행사전 참석자의 안전을 위한 비상구 안내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정부기관의 안전 현주소다. '구호 따로, 현장 따로'여서는 곤란하다.

일부 기득권층은 안전수칙 준수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안전수칙 준수 의무로부터 배제되는 것을 일종의 특권이라고 믿고 있다. 어리석은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유력 정치인 전당대회 처럼 상대가 누구든 예외없이 소방법을 적용,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원칙이 바로서야 한다. 안전은 모든 사람의 생명을 동등한 가치로 여기는 데에서 출발한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신분의 높고 낮음은 결코 문제될 수 없다.

지금의 안전규정은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어가면서 얻은 가슴 아픈 교훈의 결과다. 오죽하면 안전규정을 '피로 쓰인 규정(Regulations are written in blood)'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건 세이프타임즈 논설위원ㆍ이사

트럼프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오래전 부끄러운 과거가  떠오른다. 신참 소방공무원때 소방검사를 위해 한 건물을 방문했다. 건물주는 자신이 소방서장과 막역한 사이라며 소개했다. 혹시 그를 불편하게 해서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받을까하는 노파심과 이기심으로 업무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일이 있다.

소방의 임무는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방치돼 있는 위험요소를 찾아내 제거하고 예방해야 한다. 안전을 쟁취하기 위해 과감한 결단과 고집도 부릴 수 있어야 한다. 

과연 유력한 정치인의 전당대회에서 얼마나 많은 소방관들이 뚝심을 가지고 엄격하게 안전수칙을 적용할 수 있을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간혹 정치인 흉내를 내는 소방관을 볼 때가 있다.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이런 현상은 두드러진다. 힘 있는 정부 부처나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이것이 안전이다"라는 소신 있는 발언조차 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필요할 때만 안전을 들먹이며 오로지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사람들의 헤게모니 다툼으로부터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은 '충실한 소방법 이행'이다. 안전에 결코 타협 없는 소방전문가들의 소신 있는 행동이 소방조직에 대한 신뢰감과 존재감을 높여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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