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지은 전문위원· 변호사
▲ 오지은 전문위원· 변호사

의료사고 발생 후 의료기관과 환자측이 서로 합의를 하기도 하는데, 합의 절차는 양측이 의사소통하기 나름이지만 소송으로 가게 되는 경우 엄격하게 손해배상범위를 따지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책임제한 비율이 고려된다. 의료소송이 어렵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에 '책임제한비율'이 고려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책임제한을 하는 이유는 의료의 특수성에 있다. 통상, 아픈 사람들이 병원에 방문하게 되고, 의료인은 아픈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의료행위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료행위는 침습적이거나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도와주기 위해 의료행위를 하다가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는 사정을 참작하는 것이다.

특히 어려운 의료소송은 '원래 아팠던(기왕증이 있던) 사람이 의료사고 후 후유증이 발생한 경우, 해당 사고로 인한 책임을 얼마나 인정해야 하는지'를 따져봐야 하는 경우다. 이에 관해서는 판사도 직관적으로 알기 어렵기 때문에 감정절차가 굉장히 중요해진다.

의료소송에서의 감정절차는 매우 지난하고 힘든데 그렇다고 해 이 부분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재판을 다시 해야할 수도 있다. 관련 판례를 살펴본다(대법원 2002. 4. 26. 선고 2000다16237판결).

원고는 좌측 고관절의 대퇴골두와 비구가 모두 심하게 변형돼 있고, 골반의 좌측반과 대퇴골이 성장되지 않고 비대칭적으로 작아 운동기능이 거의 없는 상태여서 그 치료를 위해 피고 병원에서 고관절치환술(이 사건 수술)을 받았다.

이 사건 수술에서 인공고관절을 삽입하는 과정 중 골절이 발생했는데, 원고가 이 사건 수술 후 6개월 가량 치료를 받았지만 인공고관절의 감염 증상이 지속됐다. 결국 원고는 좌측 고관절에 만성 화농성 골관절염 진단을 받아 인공고관절 제거술을 받았다. 그리고 원고는 기존의 장애 외에 고관절의 가관절 상태, 좌대퇴골 단축의 장애에 이르렀다.

이에 관해 원고가 제기한 소송의 2심(원심)은 피고병원 측의 이 사건 수술 중 과실과 수술 후 조치 관련 과실을 인정하며 원고측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원심은 원고의 노동능력상실률 49.6% 전체를 인정하되, 기왕증 등을 책임제한 사유로 인정해야 한다며 피고 책임을 30%로 제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사고로 인한 후유증이 사고와 기왕증이 경합해서 나타난 경우라면, 사고가 후유증 발생에 기여한 정도에 상응하는 손해배상액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원고의 후유증이 이 사건 수술로 삽입한 인공관절을 제거하는 바람에 좌측 고관절이 가관절 상태가 된 것이 주된 원인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골수염을 완전히 치료한 후 다시 인공관절 재삽입술을 시행하면 후유증은 개선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는 의미였다.

대법원은 원심이 기왕증이 후유증에 기여한 정도와 원고의 후유증이 개선 가능한 것인지를 전혀 심리하지 않고 신체감정 결과에만 의존해 원고의 노동능력 상실률 49.6%를 전부 인정한 것은 심리 미진의 위법이라고 했다.

원고의 손해배상액은 원심에서 인정된 것보다, 파기환송심에서 더 적게 인정됐을 것이다. 소송이 길어지는 것은 물론, 손해액이 감소됐을 것이라는 점에서 소송 전 치밀하게 확인과 분석하는 것만큼이나 소송 중 감정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 오지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선의 대표변호사) △서울대 간호대 졸업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서울대병원 외과계중환자실(SICU) 근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사관, 심사관 역임 △경찰수사연수원 교수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의료기관평가인증원·의약품안전관리원 전문위원 △질병관리청·대한간호협회·서울시간호사회·조산협회·보건교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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