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보고체계 붕괴로 인해 '이태원 참사' 피해가 커졌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이임재 서울 용산경찰서장은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사고 발생(오후 10시 15분) 15~45분 전 해당 일대의 위험 상황을 인지했다. 하지만 이같은 사실이 경찰청장이나 행정안전부장관 등 수뇌부에는 제때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3일 경찰에 따르면 이 서장은 참사 2분 뒤인 오후 10시 17분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서울 치안을 총괄하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엔 사고 발생 1시간 21분 뒤인 11시 36분 첫 보고를 했다.
당시 집에 있던 김 서울청장은 오후 11시 34분 이 서장에게 걸려온 전화를 놓쳐 2분 뒤 직접 통화를 하고 난 후 참사 발생 사실을 인지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참사 발생 1시간 59분 후인 지난달 30일 오전 12시 14분이 돼서야 처음 사고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난·안전 주무부처 행안부 이상민 장관이 보고를 받은 시각은 사고 발생 1시간 5분 뒤인 지난달 29일 오후 11시 20분이었다. 그마저도 직접 보고를 받은 것이 아닌 행안부 내부 알림 문자를 통해서였다.
사고 발생 33분 뒤인 오후 10시 48분 소방청의 보고를 받은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이 오후 11시 19분 행안부 관계자들에게 긴급 문자를 돌렸는데 이 문자를 확인한 장관 비서실에서 장관에게 1분 뒤 보고를 해 장관이 이 내용을 알게 됐다.
대통령실은 행안부 장관이나 경찰 보고선이 아닌 소방청 상황실에서 첫 보고를 받았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53분 소방청 상황실에서 대통령실 국정상황실로 사고 내용을 통보했다. 상황을 확인한 국정상황실장은 오후 11시 1분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고 발생 사실을 보고했고 이후 윤 대통령은 현장 대응 상황을 점검한 뒤 오후 11시 21분 첫 지시를 내렸다.
해당 지시는 오후 11시 29분 대변인실로 전달돼 오후 11시 36분 언론에 배포됐다.
결과적으로 이 장관은 상관인 윤 대통령보다 18분이나 늦게 참사 발생 사실을 인지한 셈이다. 김 서울청장 역시 상관인 이 장관보다 16분이나 늦게 사고를 인지했다.
통상적인 보고체계의 역순이 된 것이다. 김 서울청장은 언론보다도 이 사건에 대해 늦게 알게 됐다.
엉망진창이 된 보고체계는 결국 경찰의 '늑장 대응'으로 이어졌다.
늦은 보고를 받은 김 청장은 사고 발생 2시간 10분 뒤인 지난달 30일 오전 12시 25분에야 현장 지휘를 시작했다. 그제야 현장에 경찰지휘본부가 설치됐으며 사고현장 통제와 인근 교통관리 등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미 수십명이 심정지 상태라는 소방당국의 집계가 나온 시점이었다.
이미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던 만큼 용산서장의 늦어진 보고 때문에 현장 지휘나 대응책 마련이 더 지연돼 피해가 커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서장은 현재 대기발령된 상태다. 경찰청은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 서장에 대해 대기발령 조치를 내렸다.
지휘부에 대한 책임론도 거세게 일고 있다. 일각에선 윤 경찰청장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전에 막진 못했어도 사고를 인지한 뒤 곧바로 기동대 인력을 배치해 인파 통제를 했다면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진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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