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고문의 서울역 안전실태 르뽀

130명이 숨진 프랑스 연쇄 테러 이후 3주 만에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동부 샌버나디노에서도 IS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총기 난사로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인들이 집단적 공포에 빠져들고 있다”며 “출근길, 식당, 아이들의 등교, 영화 관람에서도 공포를 느낀다”고 전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IS 테러 공포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총기 휴대가 금지된 한국은 테러에 안전할까. 지난 2월 세종시 편의점 엽총난사로 3명이 숨진데 이어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 가정집 총기 사건으로 경찰관 등 4명이 목숨을 잃었다. 본격적인 사냥철을 맞아 총기 반출이 늘면서 테러가 발생할 여지가 많은 대목이다.

세이프타임즈(www.safetimes.co.kr)가 프랑스와 미국의 테러 발생을 계기로 다중 이용시설에 대한 안전실태를 점검한다. 첫 번째로 한국교통의 심장이자, 정신적 지주인 서울역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서울역은 하루 이용객이 10만명에 달하지만 안전요원이 턱 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한과 역사가 녹아 있는 ‘생명체’ = 2008년 2월 10일 남대문(숭례문)이 전소되는 과정을 지켜 본 한국은 ‘국보 1호를 잃었다’는 슬픔을 넘어 깊은 상처를 입었다.

서울역 처럼 가슴에 와 닿는 곳이 또 있을까. 서울역은 1900년 경성역으로 영업개시 후, 남대문역으로 변경됐다가 경성역으로 환원을 거쳐 1925년 사적 제284호가 된 르네상스풍 역사로 개축됐다. 1946년 11월 1일 서울역으로 개칭된 후, 한국교통의 요충으로 60여년을 버텨왔다. 2009년부터 현대식 리모델링을 통해 역사(驛舍)의 의미를 넘어 전시장, 공연장, 컨벤션 시설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서울역은 망국의 한을 안고 ‘남부여대(男負女戴)’ 해 북녘길 만주로 떠날 때도, 전쟁의 화를 피해 황망한 남녘 피난길을 재촉할 때도, 유행가 가사처럼 눈물의 플래트 폼이었다. 서울역은 우리 민족에게 단순한 지역, 건물, 상징물이 아니다. 국민 역사와 정서가 녹아있는 ‘생명’이다.

철도경찰이 경관봉과 가스총만 보유한 채 노랑색 조끼를 입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고 있다.

◆ 실제 근무 외주경비 1.5명이 고작 = 첫눈 다운 첫눈이 내린 지난 3일 서울역은 국가 중심역 답게 북적였다. 맞이방은 빈자리가 없었다. 몸체만한 큰가방을 끌고, 앞만 보며 서둘러 가는 총총한 발걸음 속에 안전, 위협, 테러라는 단어를 생각할 겨를이 없어 보였다.

서울역의 안전실태는 어느 정도일까.  전직 서울역 경비원 출신 A씨(65)의 인터뷰는 충격이었다. 그는 “국토부 소속 철도경찰 18명, 외주 용역경비원 10명이 전부”라며 “열차내 치안유지를 맡고 있는 철도경찰이 역사 내 순찰까지 한다고 하지만 내외부 순찰과 방호는 외주 용역 경비원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A씨는 “3인 1조 3교대로 근무하는 외주 용역경비원의 동일 시간대에 실제 근무자는 3명”이라며 “휴식을 위해 1시간씩 교대근무를 하다보니 실제 근무 인원은 1.5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1.5명이 '한국의 심장'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무 범위도 광범위 했다. A씨는 “동서부 출입구, 맞이방, 광장의 노숙인 음주단속을 비롯해 광범위한 업무범위에 비해 경비인원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외주용역 특수경비원이 삼단봉과 무전기를 들고 근무하고 있다

◆ 외주용역 경비원 안전 더 위험하다 = 시민안전은 물론 자신을 방호할 무장상태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전직 경비원 B씨는 “테러 훈련도 받지 않은 철도경찰은 가스총과 경관봉만 보유하고 순찰을 하고 있어 유사시 범인체포나 상황진압이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는 “용역은 그런 것도 없이 구형 삼단봉만 찬 상태로 근무한다”고 말했다. ‘비무장, 비훈련, 무경험자’ 들이 서울역의 심장부를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방호 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시민안전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시민 이모씨(64)는 “예전 시골의 이발소 벽에 붙어 있던 ‘오늘도 안녕을’ 이라는 서양 소녀의 기도 그림이 눈앞에 어른 거린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경비원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철도경찰 한 두명이 맞이방 순찰에 급급하다 보니 역사 전체 경비가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족한 인력과 허술한 무장으로 괴한이 난입, 승객을 볼모로 총기를 난사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영배 고문(논설위원)

◆ 방심하면 '대변대화', 특단대책 필요하다= 안전은 누구와, 무엇과도 타협해선 안되고, 어느 누구도 완벽히 보장해 주지도 못한다. 그렇기에 세심한 주의, 철저한 준비, 신속한 대처가 중요하다.

‘우리나라가 테러범죄 등에 가장 안전하다’는 ‘다행스런’ 조사 보고서가 있었다. 하지만 서울역을 보면서 더 위험 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안전대책은 느림보가 되어서는 안된다. 태만이다. 손자병법의 전술처럼 차라리 ‘졸속적(拙速的)’적 준비가 필요하다.

재난은 ‘시그널’이라는 예고가 있다지만, 테러는 첩보입수나 정보분석이 쉽지 않다. 서울역 경비가 관행적인 노숙인이나 부랑인 단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방심이 ‘대변대화(大變大禍)’를 초래한 역사를 상기해야 한다. 수도 서울의 평화를 위해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 특수경비 인력 증원, 훈련 강화, 위협에 걸 맞는 무장력 구비, 유능한 경력직 특수경비원 충원을 또 예산부족을 내세워 늦춰서는 안된다.

철도공사는 '서울역은 철옹성(鐵甕城)’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앞수레의 엎어진 자국은 뒷수레의 경계가 된다'는 ‘전거지복철 후거지계(前車之覆轍 後車之戒)'를 명심해야 한다. 스페인 마드리드, 중국 쿤밍역 등 남의 나라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나쁜 전철은 밟지 않아야 한다. 안전은 결코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만드는 것이다.

한국은행 본점과 함께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라는 돔형의 옛 서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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