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설명 ⓒ 세이프타임즈
▲ 직업성 암으로 투병하고 있던 삼성 디스플레이 노동자 천기숙 님이 3일 3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반올림

"내~ 새끼 보물이 D+2350"

그녀의 카톡 프로필의 디데이처럼,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하루하루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더 보고 싶어했던 천기숙 님이 고통스런 투병과 짧은 생의 억울함을 뒤로하고 끝내 눈을 감았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그 곁을 지켜온 가족들에게도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천기숙 님은 2020년 11월, 희귀암의 일종인 자궁경부 원발 '대세포 신경 내분비암'을 진단받고, 반올림에 산재상담을 의뢰했던 분입니다. 이 암이 생긴 원인으로 삼성의 LCD, OLED, 태양광 패널 개발라인에서 12년 넘게 일을 해오면서 노출된 온갖 유해화학물질과 방사선 작업의 영향을 의심했습니다.

천기숙 님은 고 황유미님과 입사 동기였습니다. 2003년 3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19세의 나이로 입사했고, 2015년 10월 출산휴가 중 회사의 희망퇴직 요청으로 퇴직할 때까지 12년 7개월 동안 LCD 박막트렌지스터(TFT) 제조라인을 거쳐, 삼성디스플레이 OLED 제조라인, 태양광 패널 개발라인까지 디스플레이 생산 노동자로 쉬지 않고 일해 왔습니다. 야간 교대근무는 더욱 힘이 들었습니다.

디스플레이 생산 업무를 하는 동안 발암물질로 알려진 PR(감광제)을 비롯해 수십가지의 화학물질을 취급해고, 노후화된 방사선 검사장비(XRF)는 밀폐가 되지 않았습니다. 태양광은 개발라인이라 특히 수작업이 많았습니다. 핸들링 작업시 마킹 가루가 얼굴에 묻으면 서로 털어주곤 했습니다. 현장에서 안전한 일은 없었습니다.

지금은 태양광 개발라인이 없어져 진술에 의존해야 했지만, 그나마 LCD, OLED 제조공정의 유해성에 대해 연구보고서, 문헌의 근거와 함께 같은 사업장, 같은 첨단산업에서 반복된 직업성 암 등을 근거로 업무관련성이 추정돼 2022년 1월 3일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천기숙 님의 암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습니다.

그렇게 산재인정이 돼 최소한의 경제적 어려움이 해결돼 다행이었지만 그녀에게 남은 생의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문자로 반올림과의 좋은 인연에 항상 고맙다는 마음을 표현했고, 몸이 좀 회복되면 얼굴 보며 이야기 나누고 싶다 했습니다. 천기숙 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현 정부의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전략' 발표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의 '반도체 전략'에는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이 쌓여있는 반도체 첨단기업에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붓고, 안전보건환경규제를 완화해서 노동자와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학생들 많이 육성해서 기업에 공급하겠다는 계획만 보입니다.

노동자 건강과 생명을 위한 안전보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오히려 뇌출혈과 심근경색 등 과로질환이 많은 산업에 특별근로연장제를 도입해서 과로를 더욱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미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전 세계 반도체 일등 국가가 됐습니다. 반도체 산업이 중요하면 반도체를 만드는 노동자들도 중요하게 대접해야 합니다. 이제 노동자 희생만 강요하는 산업육성 정책은 중단해야 합니다. 이미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병들고 죽었습니다.

■ 천기숙 님 약력 △1984년 2월 26일생 △2003년 3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입사 △LCD제조1라인 TFT공정 오퍼레이터로 근무 △2006년 3월 OLED 개발라인 업무 △2009년 8월 태양광에너지 개발라인 업무 △2011년 7월 회사의 발령조치로 삼성SDI(기흥사업장)로 소속바뀜. 종전과 같은 업무 △2012년 7월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태양광에너지 개발라인업무 △2016년 9월 출산휴가 중 회사의 희망퇴직 요청으로 퇴직 △2020년 11월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진료 결과 '자궁경부원발 대세포 신경 내분비암(3기말)' 진단받고 항암치료 시작 △2022년 10월 3일 사망(향년 38세)

저작권자 ©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언론 세이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