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목사·간사·선생이란 삼중점에서 살며 환갑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고희까지 제게 주어진 공적 시간을 이 위치에서 지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람을 버티고 있기에 소득도 있습니다. 여기서 살기 시작했을 때, 허리를 철조망으로 동여맨 한반도의 아픔을 넘어선, 한라에서 백두까지 이어진 희망이 보였습니다.

해 아래의 세상에 주어진 것일지라도 삶은 엄정합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받아들인 덕은 보이지 않는 손길로부터 오는 복을 낳고, 개인적 불만을 채우기 위해 인해 벌인 잔치는 화를 부릅니다. 그리고 이런 엄위함으로 성경을 읽으면 다른 게 보입니다.

책은 사람이 처한 위치에 따라 다르게 읽힙니다. 삼중점에서 살다 보니 꽤 봐왔다고 자부했던 성경이 다르게 읽힙니다. 요즘은 예수님의 행적에 마음이 가서, 네 권의 복음서를 서로 비교하면서 읽습니다. 이렇게 하면 복음서 행간에 감춰진 성경 기자들의 속내가 보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복음서는 기독교 신앙의 초석이고, 기독교를 유대교와 결별하게 만든 책입니다. 그런데 복음서만큼 묵시적인 책이 없습니다. 약 2,000년 전인 고대에 여자, 글을 전혀 모르는 사람, 사회적 천민 등을 제자로 뽑아서 이들에게 하나님의 섭리를 가르치고 전했던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네 권의 복음서가 아주 묵시적이라고 합니다.

저와 달리 요한계시록과 같이 신약성경에 수록된 묵시서를 복음서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런 태도는 기독교에서 쓰는 성경의 형성 과정을 무시한 채 자신의 기호에 따라 성경을 읽은 것입니다.

성경 안에 수록된 책의 우선순위를 따로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잘못된 주장을 바로잡기 위해 이를 구분한다면 신약성경이 구약성경보다 우선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보여준 성육신, 십자가와 부활의 시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 게 기독교에서 현재 쓰는 구약성경입니다. 그리고 신약성경 안에서는 우선권이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에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가 성경 안에 수록된 모든 책의 해석을 인도하는 지침이 됩니다.

해 아래 세상에서 주어진 시공간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여러 가지 위상으로 다가오는 일을 모두 성실하게 다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는 성공과 실패가 없고 오직 구원만 있다는 걸 이정표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세상의 가치로 구분하는 성공과 실패가 없기에, 성경의 어떤 부분을 읽든지 모든 게 연합해서 신앙 공동체에 유익을 주고, 구원을 이루는 데 초석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복음서의 가르침을 우선하는 건, 인간을 죄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자유롭게 살도록 하는 걸 최우선의 가치로 마음에 두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복음서를 읽으면서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죄로부터의 자유를 가져다주는 것인지 꼭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삶에 질서가 잡히고 교회가 바르게 섭니다. 이때 인간에게 죄로부터의 자유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성경에 대한 개인의 해석은 먼저 살펴야 할 항목이 아닙니다.

성경에 있는 묵시서를 복음서보다 먼저 취급하면 이런 균형이 깨집니다. 내일·모레 지구에 무슨 일이 생길 것이란 말만 긴급하게 다루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창조와 종말이 동전의 앞뒤로 하나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태양도 식고 지구도 사라질 것입니다. 따라서 이걸 신앙으로 해석해 받아들인 후, 모레·글피쯤 일어날 변화에 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받지 못한, 죄로부터 해방을 얻지 못한 인간의 삶을 안타깝게 바라봤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인간이 지향해야 하는 죄로부터의 해방과 자유가 전제되지 않은 묵시는 우상이거나 거짓일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복음과 대조되는 걸 말하는 묵시는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마음에만 갖고 있거나 버리는 게 낫습니다. 이게 삼중점에서 성경을 읽으며 얻게 된 복음과 묵시에 관한 생각의 편린입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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