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영국에서 시작한 경제학을 거시·미시경제학으로 나눈 것처럼, 역사도 연구와 서술 범위에 따라 거시·미시사로 구분합니다. 이렇게 구분하는 이유는 역사를 연구할 때 사용하는 해석 방법의 차이와 해석자가 들여다보는 사료 때문입니다.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는 소송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자료를 제출합니다. 이때 이게 모두 재판을 위한 증거자료로 채택되지 않습니다. 증거로 제출한 자료가 오염되거나 조작되지 않았는지, 법에서 허락하지 않은 방법으로 부당하게 취득한 게 있는지 따집니다. 그런 후 법률에서 인정한 공적인 증거자료를 가지고 재판을 진행합니다.

역사 서술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먼저 역사 서술을 위해서는 자료와 사료가 필요합니다. 자료 중 일부를 서술자의 시각에 따라 사료로 채택하는데, 이때 비단에 기록한 아름다운 기록만 채택하지 않습니다. 또 조선 시대 정조(正祖)와 심환지(沈煥之)의 관계에서 볼 수 있듯이, 몇백 년이 지난 후 조심스럽게 밝혀지는 새로운 사료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동안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 부분적으로만 통용됐던, 제약이 있었던 것이기에 바로잡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수정은 대개 거시사의 오류나 한계를 미시사가 바로 잡거나 보완하는 형태를 띱니다. 건물을 지을 때 벽돌 사이에 들어가는 회반죽처럼 미시사가 거시사의 틈새를 보완해 역사라는 건물의 층위 높여가고, 강도를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역사 서술은 다양한 영역을 포함합니다. 그렇기에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자 할 때는 그 영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먼저 정돈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때 수많은 영역을 아우르는 거시사뿐만 아니라 미시사도 같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이렇게 둘을 반죽해서 읽어야, 우리의 현재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교훈을 얻기 쉽습니다.

북향민을 가르치면서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제가 채워 왔던 시공간이 늘 저의 길라잡이가 됐습니다. 이들과 같이 10여 년을 지내면서 북한에 대한 거시사보다 이들을 통해 전해 들은 미시사에서 북한의 진짜 모습을 더 많이 봤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배운, 북향민의 미시사를 관통하는 코드 중 하나가 '믿음의 방향'입니다. 상대를 믿는다고 했을 때 '어떤 방향으로 그를 믿을 것인가'가 참으로 중요했습니다. 그를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방향'으로 믿을 것인가, '나와 같이 꿀 수 있는 꿈을 이뤄가는 방향'으로 믿을 것인가가 중요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재생이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학교를 수료하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떠났습니다. 어떤 핑계를 댔든지 그들이 제게 보여준 건 개인적 욕망에 눌린 채 유혹에 빠져, 믿어줘야 할 대상을 믿지 않고 소홀하게 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도 북향민 대학생 제자 한 명이 또 자기 마음대로 휴학했습니다. 대학교 입학 후 두 번째로 한 휴학입니다. 공부하러 오라고 해도 오지 않고, 늘 카톡으로 하소연만 했습니다. '왜 이 땅까지 왔는지, 어떻게 살아보려고 그 강을 건넜는지 잊지 말라'고 그에게 늘 당부했지만, 제가 한 권면은 이미 그에게 자투리로 남겨진 휴짓조각이 돼 있었습니다.

남북한의 평화로운 교류라는 거대 담론에 밀려 개인사를 소홀하게 생각하는 북향민 제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개인사는 뒷전으로 밀어둔 채, 거대 담론에 기대 통일만 말하는 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통일투사가 아닌 시민으로서의 행복도 같이 추구하라고 합니다. 저의 바람과 달리 거대 담론만 추구하다가 가정을 깬 제자들이 몇 명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여러 영역을 보는 게 필요하지만, 그 안에 있는 개별 영역을 자세히 보살피는 것도 꼭 해야 합니다. 휴학을 감행한 그에게 이 땅까지 와서도 욕망과 유혹에 빠져 사회적 빈곤층이 되려면, 굳이 뭐 하러 산 넘고 강 건너 이곳까지 왔느냐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습니다.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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