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이란 것이 드라마와 같지 않다. 매우 길고 지루하고, 스트레스가 크고 비용도 든다. 의료 소송은 그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든다. 하나 뿐인 생명, 신체에 관한 것이기에 소송 대신 합의를 하려고 해도 그 과정이 간단하지 않다.
'이 사건에 관해서는 당사자간 합의로 끝내고, 소송을 하지 않기로 약속한다'는 것을 부제소합의라 한다.
대법원에 따르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에 관해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일정한 금액을 지급받고 그 나머지 청구를 포기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진 때에는 그 후 그 이상의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다시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단 '그 합의가 손해의 범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후발손해가 합의 당시의 사정으로 보아 예상할 수 없는 것이라면 예외적으로 다시 배상청구 소송이 가능하다.
관련 최신 판례를 소개한다(2021나50973). A씨는 2011년 10월 새벽 심한 두통으로 B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의사는 A씨에게 CT검사결과 별다른 이상 소견이 없다고 설명한 뒤 귀가토록 했다.
하지만 이 환자는 다음날 새벽 심한 두통으로 응급실에 다시 내원, 뇌출혈 진단을 받고 색전술을 받았다. 환자는 이후 약 3시간동안 깨어나지 못하고 사지가 마비됐다. 색전술 과정에서 발생한 뇌동맥류 파열이 확인돼 뇌출혈 치료를 위해 두개골 절제술과 파열된 뇌동맥류 결찰술을 받았다.
병원은 2012년 5월 작성한 장해진단서에 '뇌손상에 의한 장해 등으로 인한 노동능력 상실률이 54%'라고 기재했다.
병원은 2012년 9월 환자의 손해액이 1억8000만원이라는 손해사정 내용을 확인했다. 이에 환자에게 이 금액을 지급하고 내원한부터 퇴원까지의 진료비 전액을 감액하고 민형사상 소송과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합의했다.
소외병원 재활의학과 의사는 2019년 8월 환자의 최종 상태가 "뇌동맥류 파열에 따른 뇌출혈로 인한 것으로 노동능력이 전부 상실됐다"는 소견을 제시했다.
법원은 병원이 정확한 진단을 하지 못하고, 코일 색전술 중 뇌동맥 파열 발생의 과실, 이에 대한 두개골 절제술과 파열된 뇌동맥류에 대한 결찰술이 지연된 과실과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합의가 의료사고로 인해 발생한 손해의 범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졌다고 봤다. 합의 당시 최종장애로 인한 치료비, 개호비 등 추가손해가 발생하리라고 예상할 수 없었고, 이를 예측했다면 환자가 합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양측은 합의를 하기까지 1년을 보내고도 결국 또 소송을 해야 했다. 조정합의가 소송보다 덜 힘들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양측 당사자 모두의 시간, 비용, 스트레스를 줄이며 법정다툼 없이 분쟁을 해결하도록 조력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제대로 된 합의가 아니라면 언젠가는 다시 송사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 오지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선의 대표변호사) △서울대 간호대 졸업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서울대병원 외과계중환자실(SICU) 근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사관·심사관 역임 △경찰수사연수원 교수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의료기관평가인증원·의약품안전관리원 전문위원 △질병관리청·대한간호협회·서울시간호사회·조산협회·보건교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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