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브뢰겔의 작품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의 작품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1568·패널에 유채·114×164㎝) ⓒ 빈 미술사 박물관
▲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의 작품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1568·패널에 유채·114×164㎝) ⓒ 빈 미술사 박물관

풍덩!

방금 이카루스가 바다에 빠졌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은 이렇게 순식간에 일어났다. 아버지인 다이달로스가 태양 가까이 날아오르면 안 된다고 그토록 당부했건만 철없는 아들은 부모의 말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강한 경고의 말은 결과의 복선으로 작용했다.

아들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른 아버지는 지금 어딘가에서 이 끔찍한 장면을 보고 있었을 터.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천하에 만능 재주꾼 다이달로스도 속수무책이었다.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죽다니, 망연자실은 이럴 때 쓰는 말이리라.

▲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부분(아래쪽에 물에 빠진 이카루스의 다리가 보인다.)
▲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부분. 아래쪽에 물에 빠진 이카루스의 다리가 보인다.

하지만 그림 속 어디에도 다이달로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이 그림은 그의 시선으로 바라본 비극적 사건의 현장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 사건을 이카루스의 무모한 객기가 불러온 참사라 결론 내리고 '부모님 말씀 안 들으면 손해'라든가 '무모한 도전은 죽음뿐'이라는 교훈을 빌어 개인의 일탈에 의한 단순 사고사로 처리해도 되는 걸까?

바이러스 감염 경로를 역학조사로 밝히듯 사건 발생의 원인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보면 여기엔 복잡한 인과관계가 얽혀 있음을 알게 된다. 사실, 이 사건을 유발한 원인제공자는 따로 있다. 그건 바로 아리아드네 공주를 배신한 테세우스다.

▲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부분 (물에 빠진 이카루스의 다리)
▲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부분. 물에 빠진 이카루스의 다리

아리아드네 공주는 크레타섬에 도착한 테세우스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해마다 아테네에서 선남선녀 7명씩을 미궁 속 괴물 미노타우로스의 제물로 바쳤는데, 테세우스는 이 괴물을 해치우기 위해 제물로 위장해서 이곳에 온 것이다. 테세우스를 사랑한 공주는 붉은 실타래를 그에게 주어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괴물 퇴치 미션을 완수한 테세우스는 공주와 아테네에 가서 살기로 한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그는 공주와 함께 아테네로 향하는 배에 올랐으나, 도중에 낙소스섬에 들러 그녀가 잠든 사이 삼십육계 줄행랑을 쳐버렸다. 골칫거리 괴물을 척살한 영웅이었지만, 그가 아리아드네 공주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떠나는 바람에 이 사달이 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작품 '아리아드네'(낙소스 섬에 버려진 아리아드네 공주, 나중에 이 섬에 살고 있던 디오니소스와 결혼한다.)
▲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작품 '아리아드네'. 낙소스 섬에 버려진 아리아드네 공주, 나중에 이 섬에 살고 있던 디오니소스와 결혼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이 배신당하고 섬에 버려졌다는 소식을 들은 미노스 왕은 격분했고, 그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미궁을 제대로 만들었다면 그놈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어버렸을 텐데'라는 생각에 왕은 즉각 다이달로스를 소환했다. 그리고 미궁을 잘못 만든 죄를 물어 그와 그의 아들 이카루스를 가둬버렸다.

자신이 만든 미궁에 갇힌 다이달로스는 살아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밀랍으로 새의 깃털을 붙여서 날개를 만든 후 탈출을 시도했다. 둘은 힘차게 날아올랐으나 호기심 많은 이카루스가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 가까이 날기 시작한 것도 잠시, 뜨거운 태양열에 밀랍이 조금씩 녹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날개가 해체되면서 추락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나쁜 남자 테세우스의 이런 무책임한 행동이 이카루스의 죽음을 유발한 전적인 원인이라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오히려 이카루스의 아버지인 다이달로스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그는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큼 큰 죄를 짓고 크레타에 숨어든 도망자였다.

▲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부분(양치기가 위를 올려다 보고 있다. 아마도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고 있는 다이달로스를 보고 있는 듯하다.)
▲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부분. 양치기가 위를 올려다 보고 있다. 아마도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고 있는 다이달로스를 보고 있는 듯하다.

아테네 시절의 다이달로스는 명장(名匠)이라 불릴 정도로 매우 촉망받는 건축가이자 발명가였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을 만큼 다재다능한 조카 탈로스를 보고 질투와 시기심에 눈이 먼 그는 높은 절벽에서 조카를 떠밀어 죽여 버렸다. 한 마디로 그는 친족 살해범이다.

서둘러 아테네를 빠져나와 에게해 한복판에 있는 크레타섬으로 도망쳤는데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그의 재주를 높이 사서 은신처를 제공하며 선처를 베풀었다. 다이달로스는 크레타에서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고, 아들까지 낳으며 성공적으로 크레타에 정착하는 듯했다.

그런데 비극의 시작은 미노스 왕의 왕비가 소의 머리를 가진 반인반우(半人半牛)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고 나서부터였다. 그 전에 미노스 왕은 자신의 통치권을 강화하고자 포세이돈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이를 수락한 포세이돈은 약속의 증표로 제물로 쓰일 흰 소를 미노스에게 보냈다. 그러나 막상 흰 소를 본 그는 탐이 나서 포세이돈에게 바치지 않고 자신의 소유로 삼는 우를 범한다. 이에 분노한 포세이돈은 아프로디테에게 부탁하여 왕비가 그 흰 소를 사랑하도록 저주를 내린 것이다.

▲ 왕비 파시파에와 어린 미노타우로스가 그려진 도자기 그림 부분
▲ 왕비 파시파에와 어린 미노타우로스가 그려진 도자기 그림 부분.

미노타우로스는 자라면서 점점 음식이 아닌 가축을 먹기 시작했고, 심지어 사람까지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걱정이 커진 왕은 다이달로스를 불러 골칫거리 괴물을 가둘 건축물을 짓도록 명령했고, 다이달로스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발휘하여 누구도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 복잡한 구조의 미궁을 지어 왕에게 바쳤다. 하지만 바로 그곳에 자신이 갇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운명의 여신은 이미 다이달로스의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쥐도 새도 모를 줄 알았던 조카 살인의 현장을 아테네 여신이 목격한 것도 문제였다. 조카인 탈로스를 가엽게 여긴 여신은 절벽에서 떨어진 그를 새로 변신시켜 주었다. 낮은 지대에 서식하는 겁 많은 자고새의 습성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부분(자고새가 물에 빠진 이카루스를 보고 있다.)
▲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부분. 자고새가 물에 빠진 이카루스를 보고 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나뭇가지에 자고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그 새는 지금 막 추락해서 물에 빠진 이카루스를 바라보고 있다. 인과응보(因果應報)였을까? 이카루스의 죽음이 탈로스의 죽음과 절묘하게 닮았다. 아마도 아테네 여신이 탈로스를 대신해 복수해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애초에 다이달로스가 날개를 만들 때 열에 강한 재료를 사용했더라면 이카루스가 아무리 높이 날아올라도 날개가 녹아내리지 않았을 것이고, 아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은 다이달로스가 여러모로 이 비극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제공자임에 반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부분(자고새가 나뭇가지에 앉아있다.)(왼쪽), 유럽 자고새 모습 사진
▲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부분. 자고새가 나뭇가지에 앉아있다(왼쪽), 유럽 자고새 모습 사진

그런데 이 그림엔 이상한 점이 있다.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이라는 제목과 어울리지 않게 이카루스가 굉장히 작게 그려진 것이다.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한참을 들여다봐야 찾을 수 있을 정도다. 더구나 얼굴도 없고 다리만 보인다. 그가 이카루스라고 할 만한 증거는 공중에 흩날리는 깃털 정도일 뿐. 그림의 제목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이카루스를 찾아볼 생각도 못 한 채 바닷가 어느 평범한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풍속화로 여기기 쉽다.

▲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부분(농부가 밭 가는 모습이 제일 크게 그려졌다.)
▲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부분. 농부가 밭 가는 모습이 제일 크게 그려졌다.

오히려 이름 모를 농부와 말이 제일 크게 그려졌다. 그는 마치 신성한 일을 하고 있는 냥 말끔한 옷차림으로 밭 가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 뒤쪽엔 양치기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고(아마도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고 있는 다이달로스를 쳐다보고 있는 듯), 오른쪽 아래에는 낚시꾼이 있지만, 그들 모두는 바닷물에 빠진 이카루스를 보지 못한 듯 무심하게 자신의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바다에 떠 있는 범선도 유유히 제 갈 길을 가고 있을 뿐.

▲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부분(범선에 많은 사람들이 각자 일을 하고 있다.)
▲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부분. 범선에 많은 사람들이 각자 일을 하고 있다.

'사람이 죽는다고 쟁기가 멈추는 법은 없다.'

이것은 플랑드르(현 네델란드) 지역에 전해오는 속담이다. 화가는 이카루스 부자(父子)에게 일어난 비극적 사건과 상관없이 마을 사람들의 일상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어떤 서사에도 타인의 삶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옆에서 누가 죽는다고 해서 내가 해야 할 의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각자 처한 현실을 벗어날 수도 없으니 매정하고 서글프지만 삶을 이어가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고 있다.

▲ 브뢰겔(Pieter Bruegel the Elder, 1525~1569, 플랑드르)의 초상
▲ 브뢰겔(Pieter Bruegel the Elder, 1525~1569, 플랑드르)의 초상

16세기 플랑드르의 위대한 화가 브뢰겔(Pieter Bruegel the Elder, 1525~1569, 플랑드르)은 농민을 통해서 휴머니즘과 예리한 사회비판적 관점을 표현했다. 그가 농민의 화가라고 불리는 이유다. 브뢰겔은 속담을 판화로 제작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그중 일부를 대형 그림으로 제작하면서 유명 화가의 반열에 올라 현재는 네델란드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다.

브뢰겔의 원래 이름은 브뢰헬이다. 그런데 자신과 똑같은 이름과 직업을 가진 아들(Pieter Brueghel)과 구분하기 위해 Brueghel에서 h를 빼고 Bruegel로 서명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여기서는 브뢰겔로 적었다. 'the Elder'를 이름 뒤에 붙인 것도 같은 의미다.

▲ 앙리 마티스의 '이카루스'(왼쪽), 마르크 샤갈의 '추락하는 이카루스'(가운데), 제이콥 피터 고위의 '추락하는 이카루스'
▲ 앙리 마티스의 '이카루스'(왼쪽), 마르크 샤갈의 '추락하는 이카루스'(가운데), 제이콥 피터 고위의 '추락하는 이카루스'

어느 나라든 속담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없어선 안 될 입에 쓴 약이다. 의미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에도 '남의 염통 썩는 것보다 내 손톱 밑에 가시가 더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타인의 고통에 무뎌진 현대인들에게 이 속담의 의미가 어떻게 읽힐지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일갈하는 것임을 누구나 알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나의 불행을 남이 모르기를 바라기도 한다. 공감하되, 모른 척해주는 것도 예의가 된다. 원치 않는 위로는 고통을 당한 사람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요즘 학교에서는 기말고사가 한창이다. 교문 밖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학교는 돌아가고,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져도 기말고사는 치러진다.

Life goes on.

■ 조경희 미술팀 전문위원 = 충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한 뒤 동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충북 단양군에서 교편을 잡은 뒤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충북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하며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 서울 성동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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