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트럼프를 동문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
[시론] 트럼프를 동문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
  • 김철기 논설위원
  • 승인 2016.07.2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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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0월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모교 와튼스쿨을 방문한 김철기 논설위원. ⓒ 세이프타임즈
▲ 2015년 10월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모교 와튼스쿨을 방문한 김철기 논설위원. ⓒ 세이프타임즈

거침없는 막말을 쏟아내고 있는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70). 최근 대선 승부처로 꼽히는 3대 경합주 '스윙 스테이트' 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플로리다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 클린턴을 제치고 역전승했다. 공화당이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지명하기 위해 전당대회를 치르고 있어 그가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진 셈이다.

하지만 한국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만한 발언으로 우리에게는 '껄끄러운' 인물이 된 트럼프를 동문으로 둔 필자는 착잡하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그가 졸업한 와튼스쿨(The Wharton School) 동문·학부생·대학원생· 교직원 등 수천명이 '트럼프는 우리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연판장을 돌렸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트럼프가 공개적, 암묵적으로 지지한 △외국인 혐오 △성차별 △불관용 △독선에 대해 "분명히 반대한다"며 "와튼스쿨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이 편견과 불관용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는 것에 분개한다"고 주장했다.

로이터는 "트럼프가 자신이 와튼스쿨에서 공부한 것을 선거기간 중 대통령이 되기에 충분한 지적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주장하는 데 써먹고 있다"고 비평했다.

트럼프의 명문 아이비리그(Ivy League) 와튼스쿨 졸업학력이 논란이 일자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는 미국 8개 명문 아이비리그 펜실베이니아대학(유펜) 와튼스쿨의 경제학부과정에 3학년으로 편입한 뒤 졸업했다"고 밝혔다.

WP는 "트럼프가 뉴욕 브롱스 포담대(Fordham University)에서 2년을 마치고 유펜 경제학부에 편입해 2년을 다닌 후 1968년에 졸업, 유펜이 자랑하는 와튼스쿨 졸업생이 됐다"고 보도했다.

1881년 경제학부를 포함해 설립된 와튼스쿨은 1972년 경제학부가 분리돼 지금의 와튼스쿨이 됐다. 트럼프가 졸업한 1968년은 경제학부가 와튼스쿨에 소속돼 있었기에 졸업생인 것은 분명하다.

WP는 "트럼프가 유펜이 자랑하는 와튼스쿨 MBA가 아님에도 2007년 와튼매거진 헤드라인을 통해 '부동산업계 최고의 브랜드'라고 트럼프를 소개한 적이 있다"며 트럼프의 편입과정과 관련해서도 자서전 작가 그웬다 블레어(Gwenda Blair)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가 그의 형과 급우였던 ‘친밀한' 와튼스쿨 입학 담당자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편입이 허락됐다"고 덧붙였다.

트럼프가 '와튼스쿨의 꽃'으로 알려진 경영학석사(MBA)가 아닌 지인을 통해 경제학부를 편입해 졸업한 것을 두고 이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필자가 90년대 초반 와튼스쿨에서 2년간 MBA를 하며 체득한 '와튼스쿨 학풍' 과 비교하면 그가 "와튼스쿨을 제대로 다니고 공부를 했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와튼스쿨은 미 동부 필라델피아 8개 아이비리그 학교 가운데 하나인 펜실베이니아대가 자랑하는 경영대학과 비즈니스 스쿨이다. 1881년 철강부호 조셉 와튼이 미국 최초로 세웠다. 전통적으로 재무학(Finance)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다. 파이낸셜타임즈(FT)가 와튼스쿨 MBA를 2001년부터 8년간 세계 랭킹 1위로 선정한 '톱 비즈니스 스쿨'이다.

무엇보다도 와튼스쿨은 라이벌 하버드, 스탠포드대 비즈니스 스쿨과 학풍이 사뭇 다르다. 이들 학교 MBA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아버지 사업을 물려 받는 것'이라는 대답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반면 와튼스쿨 학생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자수성가형이다. 하버드 등이 집안이 좋고 부모가 기부를 많이 하는 학생(주로 백인)을 많이 뽑는 데 비해 와튼스쿨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 든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 낼' 학생을 선발한다. 이들은 다른 문화, 교육과 직업배경, 실무경험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장점을 배워가는 데 가치를 둔다.

와튼스쿨은 외국인 학생 비중이 30~40%가 되는 일종의 '멜팅 팟(Melting pot)'이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인종, 문화, 가치 등을 존중하고 배운다. 그러면서 정작 혜택을 가장 많이 보는 쪽은 대부분 외국여행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미국학생이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던 스터디그룹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화제와 토론 소재, 지식교류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그런 학풍은 필자의 인생관과도 맞닿아 있다. 소수민족에게 우호적이고 서로 다른 문화배경을 존중하는 분위기에 매력을 느낀 필자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수학하고 한국은행에서 10년간 실무경험을 쌓은 뒤 어눌한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어려움 없이 터프하기로 소문난 와튼스쿨 MBA를 무난하게 마칠 수 있었다.

필자가 와튼스쿨 2년차에 아시아 학생을 초청해 다른 경험을 듣고 토론하는 '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클럽'을 조직, 회장을 맡아 매주 라운드 테이블 토론을 성공적으로 주재한 것도 어찌보면 이런 학풍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각국 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장단점을 나누는 학풍을 생각한다면 트럼프의 이기적인 자국이익 보호, 약소국민·이민자·장애인에 대한 비방, 여성비하 등의 언행은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도 없다.

약자를 공격하는 자는 떳떳하지 못하다. 그의 최근 언행을 보면 안하무인이다.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는 자리다. 하물며 세계 초강대국 최고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이 말이다.

트럼프의 편협·편향된 가치관과 막무가내 언행으로 볼 때 와튼스쿨 같은 명문학교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로 볼 수 없다. 상대방 약점을 비난하고 서슴없이 자기 욕심을 채우려 하는 태도는 공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기업가로서도, 와튼스쿨에서 '매우' 강조하는 비즈니스 윤리(Business ethics)에 전혀 맞지 않는다.

트럼프에게도 필자가 모르는 장점이 많이 있는 듯 하다. 그를 지지하는 세력을 보면 말이다. 현 정부에 대한 불만세력을 교묘하게 자기편으로 당기는 마력같은 것이 분명히 있다.

리더십은 그 힘이 정제되고 비전·파워· 실제 행동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명문학교 출신이라면 더욱 언행일치가 요구된다. 엘리트인 척 하는 것은 엘리트로서 할 짓이 못된다.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떠오른다.

'한국의 안보상황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고비용구조로 바꾸겠다' '한미자유무역 협정을 철폐하겠다'는 등 가뜩이나 힘든 상황인 우리나라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발언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논지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언급을 피하고져한다.

수많은 와튼 커뮤니티 멤버들이 트럼프를 동문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말에 공감한다. 동문으로서 공감에 한표를 행사하는 것 조차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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