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쪽짜리 중대재해법 ⓒ 세이프타임즈
▲ 반쪽짜리 중대재해법. ⓒ 서석하 논설위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00일이 겨우 지났다. 시행된 지 100일 갓 넘은 법에 대해 경영계는 지속해서 산재감소 효과 없이 현장 혼란이 심화되고 경영활동이 위축되고 있다고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발생한 사망사고들이 대부분 기초적인 안전보건 조치를 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였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과 다름없이 경영책임자의 방만한 안전보건경영으로 사람이 죽었고, 경영책임자와 법인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인해 수사가 지연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공포 이후 시행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으나 예방에 집중하기보단 처벌을 회피하기 위해 집중한 결과가 오늘날 나타난 것이다.

특히 경총은 언론을 호도하는 것을 넘어 지속해서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건의서를 제출하고 있다. 경총이 낸 건의서는 헌법상에 보장된 국민의 생명권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주장이다.


① 직업성 질병자 범위(중증도 기준, 사망자 기준 요청)

직업성 질병자의 경우 이미 법으로 '1년 이내 3명 이상'이라는 제한적인 조건과 함께 시행령에서 '급성중독 및 급성중독에 준하는 24개 질병'으로 더욱 범위가 좁혀졌다. 

이는 1년에 몇 건 발생하지도 않을 정도로 축소된 것으로 오히려 과거의 직업성 사례 등을 통해 추가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경총은 '중증도 기준'까지 추가하여 사실상 직업성 질병으로 인한 중대산업재해를 사문화시키려 하고, 직업성 질병에 구체적인 사망자 기준을 추가하여 산업재해를 오로지 '근로자의 부주의'로 몰려 하고 있다.

이미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재해' 중 중대재해에 해당하는 것만을 중대재해로 보고 있다. '업무관련성'이 충족되는 사망, 사고, 질병만을 명백하게 하고 있는데 직업성 질병자에 따로 사망자 기준을 추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사족이다.


② 경영책임자의 정의('이에 준하는 자'의 구체적인 정의, 사업대표 책임면제 요청)

경영책임자의 정의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정에서 후퇴하여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하 '이에 준하는 자')으로 제정되었다. 

경총은 지속적으로 '이에 준하는 자'이라는 조문이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공장장, 현장소장 등)도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실질적 경영책임자 책임 회피에 몰두했으며, 일부 기업들은 CSO(Chief Security Officer) 최고 보안 책임자를 선임하여 피해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해석은 단호하게 사업대표를 향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배경과 입법취지는 기존의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서 다루지 않았던 인력, 조직, 예산 등의 의무를 경영책임자에게 부여한다는 점이다. 

경총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이에 준하는 자' 선임 시 사업대표 의무이행 책임을 면제한다면 그 순간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문화 될 것이다.


③ 중대산업재해 관련 경영책임자 의무(산업안전보건법 등으로 한정, 제3자 종사자 책임에 임대·발주 제외)

경총이 주장하는 중대산업재해 관련 경영책임자 의무는 산업안전보건법 수준으로 축소하고, 원한다면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제외하여 다른 법령에서 규정된 것만 보호 대상으로 놓겠다는 것이다. 

또한, 제3자의 종사자에 책임에서 특히 임대와 발주를 제외해달라는 내용은 경영책임자와 법인이 스스로를 발주자로 삼아 중대재해에 관련 처벌을 벗어나겠다는 꼼수다.

이천 물류창고 건설현장 화재참사와 광주에서 발생한 2건의 붕괴사고 등에서 발주자의 책임이 큰 문제점으로 지적받았다. 임대와 발주를 제외해달라는 요구는 후안무치다.


④ 안전보건교육 수강 및 중대산업재해 발생사실 공표(교육시간 대상 및 시간 축소, 공표 제외)

경총은 기존의 중대산업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가 받는 교육을 (산업안전보건법과 같이) 유죄판결 시로 변경하며 교육시간을 더욱 축소하려고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영책임자에 대한 안전보건교육은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 관리자,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안전보건교육과 달리 안전보건경영에 필요한 교육을 듣는 것이다. 

교육시간의 경우도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유죄판결을 받을 시 병과하여 안전보건교육을 경영책임자에게 200시간 이내에 부과하게 되어있다. 

중처법에서는 중대재해 발생 시 안전보건교육을 20시간 이내로 실시하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시간이 충분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공표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 공표와 달리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경영을 경시하고 미준수한 법인을 공표함으로서 동종업계 전파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바, 오히려 구체적인 의무 위반 사실이 드러나는 1심 재판이 끝나면 바로 공포하도록 공포 조문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경총은 건의서 곳곳에서 시행령으로 할 수 없는 것들까지 요구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을 염두에 둔 포석을 까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한편, 이번에 유출된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시도에 대한 구체적인 연차별 이행계획이 공개되었다.

2022년 하반기에 시행령을 개악함과 동시에 지침과 가이드로 무력화하고 2024년에 법 개정을 통해 사문화를 하겠다는 내용이다. 또다시 정경유착이 부활하는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스럽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내용에 대해 한국노총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산업안전보건법의 안전보건 조치의무와 유사하게 만들어 경영책임자와 법인이 수사와 재판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지침·매뉴얼'을 통한 방식에 대해서도 안전보건규제를 형해화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무용지물로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총의 건의서와 윤석열 정부의 이행계획서에 담긴 내용대로 중대재해처벌법이 개악된다면 일터에서 계속되는 노동자의 죽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난날 한국노총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노총의 친구가 되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 노동자를 위험한 일터로 밀어 넣고 사용자에게 노동자의 목숨값으로 돈을 벌도록 한다면, 그 정부가 노동자의 친구인지 사용자의 친구인지는 자명하다.

한국노총은 윤석열 정부에 몇 번이고 반복했던 말을 다시 한다.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경영계의 입맛에 맞게 중대재해처벌법을 사문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노·사·정이 합의한 산재예방 예산을 과감하게 확대하고,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통해 실질적인 산재예방과 감소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 한국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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